위트니스 리의 삼일론 논박(차영배 박사)에 대한 지방교회 측의 반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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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예장 통합측 이단상담소장이었던 최삼경 목사의 "아버지, 아들, 성령은 각기 다른 세 영들이고, 예수님 하나님 속에 아버지 하나님과 성령 하나님도 들어 있다면 그것은 양태론"이라는 관점이 삼신론이라는 지적이 있어 왔습니다.
한편 아래 글은 이러한 최삼경 목사의 문제있는 신론을 두둔하기 위해 차영배 박사가 월간 교회와 신앙 2001년 10월 호에서 소개한 삼위일체 관련 논문 중 일부입니다(124쪽). 아래 내용에서 보듯이 차영배 박사는 <믿는 우리 안에는 성령하나님은 계시되 아들하나님이나 아버지 하나님은 안 계신다>고 함으로 성경이 계시하고 있는 <삼위일체 세 인격들 간의 상호내재(내주)>를 부정하는 최삼경 목사와 똑같은 실수를 범하고 계십니다.
만일 누구든 요한복음 14:10, 20에서 주 예수님이 직접 말씀하신대로 아버지 하나님과 아들 하나님 (그리고 성령 하나님)이 서로 안에 계심을 믿는다면, 성령하나님이 우리 안에 들어 오실 때 당연히 아버지와 아들 하나님도 들어오셨다고 말해야 옳습니다. 그러나 차영배 박사는 최삼경 목사와 같은 신학적 관점을 가지심으로 <믿는 이들 안에는 성부와 성자는 안 계신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관점은 성경의 수 많은 구절들과 직접적으로 충돌을 일으킬 뿐 아니라 우리가 믿을 때 영접한 하나님이 과연 누구인가에 대한 심각한 의혹을 제기합니다. 그러므로 삼신론 의혹을 받고 있는 최삼경 목사를 두둔하며 그의 신학사상에 문제가 없다고 공개적으로 말하는 것은 성경의 가르침 테두리 안에서만 보호 받을 수 있습니다. 만일 성경의 가르침을 벗어나면서까지 무리하게 특정인을 옹호하다가 <한 개인의 잘못된 삼위일체론>에 대한 의혹이 심지어 <한국 장로교단 전체>의 삼위일체 관련 신학적인 입장에 대한 의혹으로 번질 수 있음이 우려되고 있습니다.
현재 쟁점이 되는 핵심요점은 요14:10, 20 에서 예수님이 친히 말씀하신 <삼위의 (인격 간의) 상호내재를 부인>하는가 아니면 성경말씀을 따라 <삼위 간의 상호내재를 믿고 인정하는가>하는 것입니다.
유감스럽게도 아래 차영배 박사의 논문내용은 최삼경 목사와 함께 삼위의 상호내재를 정면부인하는 내용을 담고 있어서 진리를 깊이 있게 추구하는 많은 믿는이들의 우려를 낳고 있습니다. 차영배 박사가 평소에도 아래와 같이 믿고 있는지 아니면 최삼경 목사를 두둔하기 위해 무리한 논리를 펴고 있는지는 분명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아래 내용 자체만 본다면 심각한 신학적, 성경적인 문제점이 관찰 됩니다.
아래 내용은 최삼경 목사가 발행인으로 있었던 월간 교회와 신앙 2001년 10월호 124쪽에서 인용한 것입니다. 이 글은 http://bbs.kcm.co.kr/NetBBS/Bbs.dll/chnfth/qry/zka/B2-lBYZp/qqo/005D/qqschfld/008/qqschtxt/%C1%F6%B9%E6%B1%B3%C8%B8/qqatt/%5E^ 에서도 직접 읽어 볼수 있습니다.
(차영배 박사가 주장 하길)
성부와 성자가 아니라, 성령께서 내주하심
"영(靈)은 우리 안에 내주할 수 있다는 생각은 옳다. 그러나 삼위 하나님을 모두 같은 영으로 생각하는 것은 옳지 않다. 하나님 아버지는 영이시지만, 우리 안에 들어오실 수 있는 영은 아니고, 오직 그에게서 나오시는 영 곧 성령이 우리 안에 내주하신다.
만약 성부께서 우리 안에 들어오시면, 우리는 이미 죽어버린다.
어떻게 성부 하나님이 우리 안에 들어오실 수 있는 것처럼 감히 생각할 수 있는가! 참으로 어이없는 일이다. 이것은 성부 하나님이 어떠한 분이심을 전혀 모르는 무지에서 나온 것이라 아니할 수 없다. 하나님의 영광이 시내산에 임재했을 때,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까이 오지 못하도록 하셨다: "모세가 하나님을 맞으려고 백성을 거느리고 진에서 나오매, 그들이 산 기슭에 섰더니, 시내산에 연기가 자욱하니 여호와께서 불 가운데서 거기 강림하심이라. 그 연기가 옹기점 연기 같이 떠오르고 온 산이 크게 진동하며, 나팔 소리가 점점 커질 때에 모세가 말한즉 하나님이 음성으로 대답하시더라. 여호와께서 시내산 곧 그 산꼭대기에 강림하시고 그리로 모세를 부르시니, 모세가 올라 가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내려가서 백성을 신칙하라. 백성이 돌파하고 나 여호와께로 와서 보려고 하다가 많이 죽을까 하노라. 또 여호와께 가까이 하는 제사장들로 그 몸을 성결히 하게 하라. 나 여호와가 그들을 돌격할까 하노라"(출 19:17-22).
성자 하나님께서도 우리 안에 들어오실 수 있는 분이 아니다.
그는 몸과 영혼이 있는 분이심과 동시에 하나님의 아들이시다. 사도요한은 밧모섬에서 주 예수의 영광스러운 모습을 보고, 그 앞에 엎드려져 죽은 자같이 되었다: "내가 볼 때에 그 발 앞에 엎드러져 죽은 자같이 되매, 그가 오른손을 내게 얹고 가라사대, 두려워 말라! 나는 처음이요, 나중이니" 라고 하셨음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이상 인용 끝)
차영배 박사는 또 같은 논문인 월간 교회와신앙 2001년 10월호 122쪽에서 다음과 같이 '성령의 내주로서 충분하기 때문에 주 예수께서 우리 속에 내주하실 필요가 없다' 라며 역시 삼위의 상호내재를 부인하는 입장을 분명히 밝히고 있습니다.
(차영배 박사가 주장하길)
"우리 안에 내주하시는 그리스도는 바로 성육신되신 분이다 라는 명제는 옳지 않다. 왜냐하면 주 예수는 부활하셔서 승천하사 지금 하나님 우편에 계시기 때문이고, 우리 안에 內住하시는 분은 주 예수께서 보내주신 성령이기 때문이다. 주님은 우리 마음 속에 갇혀 계시는 분이 아니다. 성령의 내주에 관하여는 사도요한이 분명히 밝히고 있다: "그의 계명들을 지키는 자는 주 안에 거하고 주는 저 안에 거하시나니,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그가 우리 안에 거하시는 줄을 우리가 아느니라"(요일 3:24). 성령의 내주는 곧 주 예수께서 내주하시는 것과 조금도 다름이 없다.
성령의 내주로써 충분하기 때문에 주 예수께서 우리 속에 내주하실 필요가 없다.
그는 재림 때까지 하나님 아버지의 우편에 계신다는 것이 사도신경이다. 따라서 주 예수는 우리 안에서 갇혀 계시는 분이 아니기 때문에 제한받으실까 염려할 필요는 없다."(이상 인용 끝)
만일 위 차영배 박사의 주장처럼, 아버지 하나님이 사람 가까이 오면 사람은 죽어 버릴 것임으로 우리 안에 오실 수 없고, 성령님이 내주하심으로 충분하기 때문에 예수님 본인은 우리 안에 계실 필요없다는 주장이 맞다면 다음과 같은 성경 말씀들은 거짓말이 될 것입니다. 누가 되었든 성경 말씀을 정면부인하는 것은 심각한 결과를 초래할 것입니다.
1. 요한복음 14:23 '사람이 나를 사랑하면 내 말을 지키리니 내 아버지께서 저를 사랑하실 것이요 우리(아들과 아버지)가 저에게 와서 거처를 저와 함께 하리라' (주님을 사랑하여 말씀지킨 댓가가 아버지가 와서 거처를 함께 하며 우리를 죽여버리는 것인가?)
2. 요일2:23 '아들을 부인하는 자에게는 또한 아버지가 없으되 아들을 시인하는 자에게는 아버지도 있느니라(eko,(2192) 가졌느니라)' (아들을 시인한 댓가가 아버지를 가짐으로 죽어버리는 것인가?)
3. 요일2:24 '너희는 처음부터 들은 것을 너희 안에 거하게 하라 처음부터 들은 것이 너희 안에 거하면 너희가 아들의 안과 아버지의 안에 거하리라' (처음부터 들은 것을 우리 안에 거하게 허락한 결과가 우리가 가까이 가서는 안되는 아버지 안에 거하게 됨으로 죽어버리는 것인가?)
4. 살후1:1 '바울과 실루아노와 디모데는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데살로니가인의 교회에 편지하노니' (바울은 아버지 하나님 안에 있음으로 이미 죽어버린 데살로니가 교회성도들에게 이 편지를 쓴 것인가?)
5. 성령 하나님은 사람 안에 오셔도 아무 문제가 없고 아버지 하나님은 가까이 오시면 돌격하여 죽여버리고 만다는 차영배 박사의 생각은 성령은 아버지보다 열등한 하나님이기 때문인가? 아니면 빛과 거룩이신 삼위 하나님의 보편적인 본질과 속성에 있어 성령 하나님은 아버지 하나님과 다르다고 믿는가? 그렇다면 심각한 일이 아닐 수 없다.
6. 차영배 박사가 인용한 구약 출19:17-22 에서는 창조주인 여호와와 피조물인 백성들 사이에 긴장과 대치가 엿보이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어지는 출애굽기 24장에서는 '언약의 피로 인해... 하나님이 이스라엘의 존귀한 자들에게 손을 대지 아니하셨고 그들은 하나님을 보고 먹고 마셨다'(6-11절)고 되어 있다. 그렇다면 구약에서 사람이 하나님 앞에 나아 가도록 쓰임 받았던 짐승의 피보다 더 효능있는 예수의 보혈을 의지하고도 신약의 믿는 이들이 아버지 앞에 나아가면 역시 죽어버리는가? 이것은 보혈의 가치를 무시하는 것이 아닌가?
7. 요일5:11-12 '...이 생명이 그의 아들 안에 있는 그것이라. 아들이 있는 자에게는 생명이 있고 아들이 없는 자에게는 생명이 없느니라' (차영배 박사의 성경해석에 의하면 여기서의 <아들>은 우리 안에 들어오신 성령님인가? 우리가 생명을 얻는데 아들 자신은 필요없고 아들을 대신한 성령이면 족하다면 왜 이곳에서 요한은 <아들을 대신한 성령> 또는 <성령자신> 안에 생명이 있다고 하지 않고 <아들 안에 생명이 있다>고 말하는가?)
8. 고후13:5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신 줄을 너희가 스스로 알지 못하느냐 그렇지 않으면 너희가 버리운 자니라' (차영배 박사의 성경해석에 의하면 여기서의 예수 그리스도는 예수그리스도 본인은 아니고 우리 안의 성령을 가리키는가?)
9. 갈2:20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예수 그리스도가 저 보좌 우편에만 계시고 바울 안에는 안 계시다면 바울은 지금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인가? 바울은 왜 <성령> 또는 <예수를 대신한 성령>이 내 안에 사신 것이라고 하지 않고 <그리스도>가 내 안에 사신다고 특정하여 말하고 있는가?)
이외에도 <예수 그리스도>가 믿는 이들 안에 사신다는 성경 기록은 수도 없이 많습니다. 그리고 통상 복음을 전할 때도 <예수님>을 영접하라고 권하지 <예수님은 제외되고 예수님을 대리한 성령만>을 영접하라고 권하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습니다.
이처럼 최삼경 목사의 삼신론 사상에 대해 전혀 문제가 없다고 두둔하는 분들의 신론에도 많은 문제점들이 있는 것을 우리는 지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 참고자료: 우리는 어떤 그리스도를 영접했는가?
삼위일체론(또는 기독론)이 우리의 신앙의 핵심입니다. 따라서 이와 관련된 아래 두 가지 질문들은 주님 앞에 가져가 진지하게 고려해 볼만한 가치가 있을 것으로 믿습니다.
1. 우리 안에 생명으로 들어오신 주 예수님은 여전히 육신이 있는 분이신가?
요한일서 5:12는 '아들이 있는 자는 생명이 있고 하나님의 아들이 없는 자에게는 생명이 없느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로마서 8:3은 '하나님은 자기 아들을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보내어'라고 말합니다. 이 둘을 함께 놓고 볼 때 우리가 성경이 말하는 참된 하나님의 아들인 예수님을 생명으로 영접했다면 이 분은 우리 안에서도 '하나님-사람'(God- Man)으로 계셔야 옳습니다. 물론 이것은 비밀하며 사람의 머리로 쉽게 이해할 수 없는 것이나 성경대로라면 그래야 할 것입니다. 각자가 자신 안에 영접한 분이 이러한 분인지를 한 번 쯤 진지하게 점검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만일 자신 안에 생명으로 들어오신 예수님에게 영화롭게 된 육신은 없다고 생각하신다면 '다른 예수'를 영접했거나 아예 '하나님의 아들'을 참되게 영접한 적이 없을 수 있습니다. 심각한 일입니다.
2. 우리가 아들 하나님을 구주로 영접했지만 아버지 하나님도 우리 안에 계신가?
많은 분들의 인식에는 "아버지 하나님"은 늘 저 하늘보좌에 남아 계실뿐 역사상 사람 가까이 오신 적이 없으십니다. 그러나 요한복음 14:10에서 주님은 '내가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는 내 안에 계신 것을 네가 믿지 아니하느냐'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영접하여 우리 안에 생명으로 들어오신 예수님 안에는 아버지 하나님도 계셔야 옳고 또 실제로 계십니다.
그런데 어떤 분은 "아버지 하나님"은 우리 안에 오실 수가 없다고 주장하십니다. 아니면 '아버지의 본성'은 계시지만 "아버지 하나님 자체"(인격)는 안 계신다고 속으로 생각하십니다. 그러나 요한복음 14:10에서 '내가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는 내 안에 계신 것'은 본성만 그렇고 인격은 제외된다는 말이 아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