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화' 진리 왜곡에 대한 지방교회측의 반박 및 시정요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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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신인: Daniel Towle 외 3인 - August 12,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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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신인: 전 편집위원/ 이영호 현대종교 사목
제목 : '신화' 진리 왜곡에 대한 지방교회측의 반박 및 시정요구
안녕하십니까? 우리들은 현재 쌍방간에 전개되고 있는 이 심각한 현안에서 이 일에 관계된 지방교회들을 대표합니다.
현재 귀사의 사목으로 재직 중인 전 편집위원 이영호 목사님은 월간 현대종교 2003년 7월 호에서 '지방교회의 신인합일 교리에 대한 비판 결정론-계시의 최고봉'이란 제목의 장문의 글을 발표하신 바 있습니다. 총 24쪽(112-135쪽)인 이 글의 전반 8쪽에서 필자는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창1:26) 개념에 대한 우리측과 기타 성서 신학자들의 주장들을 인용 소개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나머지 지면들에서 필자는 주로 위트니스 리와 워치만 니 그리고 그들의 동역자들의 <신화 관련 주장들>을 인용한 후 비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전체 논문 중에서 위 타인의 인용문들 내용을 제외하면, 필자의 순수한 자기 주장은 다 합쳐도 4-5 쪽이 넘지 않는 것으로 보입니다.
외견상 이 논문은 평범한 진리 비판처럼 보일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그 내용을 정밀분석 한 바에 따르면, 놀랍게도 이 글 안에는 교묘한 방법으로 이뤄진 사실왜곡과 거짓 단정들이 여기 저기에서 발견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거짓 단정들은 우리측의 지극히 성경적인 신화 관련 가르침을, 독자들에게 마치 비 성경적인 가르침처럼 보여지게 했습니다. 즉 귀하들은 독자들이 마땅히 알고 믿어야 할 구원 관련 성경 진리들을, 경계하고 배척해야 할 것으로 착각하게 하는 심각한 오류를 범하고 계십니다.
우리는 이러한 심각한 사실왜곡 및 그에 대한 무책임한 확산이 이단 전문지인 현대종교의 영향력을 등에 업고 반복되고 있는 현실에 대해 깊이 우려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한국 교계 전체를 위해서도 매우 불행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우리는 귀측이 이영호 목사님의 부정확한 판단과 평가를 근거로, 반복해서 우리 측 진리를 왜곡시키고 또한 이를 문서를 통해 유포시키시는 것에 대해 매우 유감스럽게 생각하며 이에 강력히 항의하는 바입니다.
1. 이영호 현대종교 사목의 신학자적 양심과 자질을 의심함
전 현대종교 편집위원이신 이영호 목사님은 작년 8월에도 아래와 같은 허위 사실로 위트니스 리와 전세계 지방교회 성도들의 명예를 현저하게 훼손시킨 바 있습니다.
귀하는 2002년 8월호 현대종교 기사를 통해 "위트니스 리가 인도접경인 곤명 지방에서 3년 사역시 인도 신비주의 내지는 뉴에이지 사상에 영향을 받았고, 그 이후 오랜 사역기간 동안 바로 이 이단사상을 발전시켜 '사람이 하나님이 된다'는 뉴에이지 교리를 전파하고 있다"고 주장하신 바 있습니다. 이런 말은 위트니스 리가 문제의 지역에서 실제로 봉사했고 그 동안 그 지역의 뉴에이지 추종자들에게 영향받았어야 성립될 수 있는 가설에 불과합니다. 그런데 쌍방의 서신 교환을 통해, 인도접경 곤명 지방에서 워치만 니 형제를 도와 사역했던 사람은 위트니스 리가 아니고 니 형제님의 또 다른 동역자였던 위광휘 형제였음이 만 천하에 드러났습니다. 즉 귀하는 엉뚱한 사람의 행적을 위트니스 리에게 덮어씌워 만든 허위 시나리오를 토대로, 위트니스 리와 전세계 지방교회 성도들을 뉴 에이지 교리 추종자들로 공개적으로 정죄하는 심각한 실수를 저지르신 것입니다.
만일 이영호 목사님이 양심적인 분이라면(딤전2:19), 자신의 명백한 실수를 솔직히 인정하고 공개 사과하는 하나님의 자녀다운 모습을 보이셨어야 했습니다. 아울러 자신의 실수로 인해 지방교회측이 부당하게 받은 정신적 피해와 실제적 손실들에 대한 배려 차원에서, 현대종교 측과 상의 하에 '정정 보도' 내지는 '지방교회측에게 반론권 허용' 등의 후속조치를 취하여, 공정한 평가와 정당한 변호 기회를 제공했어야 마땅합니다. 그러나 귀하와 현대종교 측은 성경의 원칙(마18:15)을 따라 대화로 갈등을 해결하려는 몇 차례에 걸친 우리측의 노력을 고압적인 자세로 묵살해왔습니다. 이뿐 아니라 '회복의 본질을 바꾸어 놓았다'는 문구를 어디서 떼어내어 전혀 상관도 없는 다른 문맥에 끼워 넣어 만든 또 다른 허위 사실로, 재차 지방교회측을 매도하는 반격을 펼치고 있습니다.
이처럼 일반적인 상식으로는 쉽게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지금 월간 현대종교를 통해서 반복되고 있는 것을 보면서, 우리는 깊은 우려를 금할 수 없습니다.
이에 우리는 아래에서 귀측의 고의성이 엿보이는 사실 왜곡과 전문가로서의 학문적 능력이 의심스러운 글쓰기 행태를 구체적으로 지적하며 반박하고자 합니다.
1) '위트니스 리가 1984년부터 회복의 본성을 바꾸어 놓았다'?
이영호 목사님은 자신의 글에서, (사람이 하나님이 됨에 관한 진리인) "'계시의 최고봉'은 위트니스 리가 1994년부터 1997년 6월까지 그의 생애 말년 3년 6개월 동안 설파한 교리로써 그의 생애의 최후의 교리라고 할 수 있겠다"(123쪽)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1) 이영호 목사님의 사실 왜곡의 실상과 그 속셈
귀하는 최고봉의 진리에 대한 (위트니스 리의) 주장을 요약하겠다며 "이 형제님의 사역이 1984년까지는 문제가 없었지만 1984년부터는 이 형제님이 그의 사역을 바꾸었고 이것이 회복의 본성을 바꾸어 놓았다"는 지방교회 반대자의 말을 인용했습니다.
그리고 귀하는 "그렇다면 반대자들의 지적처럼 79세 고령의 나이에서 위트니스 리가 '바꾸어 놓았다는'는 회복의 본성이 과연 무엇이었을까?"라고 스스로 반문한 후 아래 내용의 위트니스 리 글을 인용했습니다. "...금년(1994년) 봄에 나는 더 높은 단계로 올라갔다. 내가 본 것은 하나님이 사람되심으로 사람이 하나님이 될 때만이 그리스도의 몸이 산출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이상의 최고봉이다". 그리고 이어서 귀하는 위트니스 리의 〈이상의 최고봉과 그리스도의 몸의 실제〉라는 책자 내용을 길게 인용했습니다(124-126쪽). 또한 귀하는 워치만 니와 비교하겠다며 이어서 워치만 니의 글을 인용한 후, "이런 점에서 위트니스 리는 극동의 반대자들로부터 '회복의 본성을 바꾸어 놓았다'는 비난을 받았던 것으로 보인다"라고 주장했습니다(현대종교, 129쪽). 또한 귀하는 자신의 글 거의 끝 부분에서도 위트니스 리가 작사한 <어떤 기적 어떤 비밀인가> 라는 찬송시 전문을 소개한 후 "이상은 위트니스 리가 1984년(79세)부터 바꾼 '변질된 회복운동'의 내용이라고 볼 수 있다"(134쪽)라고 단정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귀하가 위트니스 리가 전파한 사람이 하나님이 되는 소위 '최고봉의 진리'는 '변질된 회복운동'에 불과하다는 인상을 독자들에게 심어주려 한 생생한 증거입니다.
(2) 이영호 목사님이 억지로 왜곡시켰던 내용의 진실
그런데 우리가 분명히 기억해야 할 것은 이영호 목사님이 온갖 방법으로 '최고봉의 진리'와 억지로 연관지으려 한 '회복의 본성을 바꿈' 또는 '회복이 막다른 골목에 왔다'라는 표현은, 소위 '최고봉의 진리'와는 전혀 무관한 배경에서 나왔다는 사실입니다. 즉 그런 표현들은 1984년 전후로 지방교회 내부에서 본격적으로 실시된 <새로운 복음전파 실행>(호별 방문 복음전파 실행)과 <새로운 집회방식의 실행>(모든 성도들이 집회에서 3분씩 신언함)으로의 전환과정에서 대두되어 나온 말입니다. 즉 위트니스 리가 그 전까지는 라이프 스타디로 명명되는 성경본문 강해에 그의 사역을 치중하다가 1984년부터 복음전파 등 교회생활의 실행방면에 관심을 두고 인도하던 전환기에 이와 관련하여 나온 말들이었던 것입니다.
이 점은 귀하가 인용했던 단락인 다음과 같은 내용을 보더라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이 구년 동안 나는 생명과 하나님의 경륜과 하나님의 분배에 관한 많은 메시지를 내어놓았다. (여기부터 인용됨) 그 반대자들은 말하기를, 이 형제님의 사역이 1984년까지는 문제가 없지만, 1984년부터는 이 형제님이 그의 사역을 바꾸었고, 이것이 회복의 본성을 바꾸어 놓았다고 했다(인용 끝). 그러므로 그들은 이 형제의 잘못된 사역으로 인한 변질로부터 회복을 구출하기 위해 뭔가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들은 거짓되이 사람들에게 말하기를, 내가 이전처럼 생명과 그리스도와 그 영에 대해 말하지 않고, 대신에 항상 통계와 예산과 인수에 대해서만 말한다고 했다. 사실상 이 사람들과 (후략)"(위트니스 리, 섞임에 관한 실제적인 요점들, 한국복음서원, 1994, 60-61쪽).
1984년 전후로 위트니스 리가 이전처럼 생명, 그리스도, 그 영에 대해 말하지 않고 통계와 예산과 인수에 대해서만 말함으로 '회복의 본성을 바꾸었다'라고 불평한 것을, 의도적으로 이와는 전혀 상관도 없는 '최고봉의 진리'와 연결하여, 없는 말을 지어낸 것은 불의 한 것입니다. 이 한 가지만으로도 이영호 목사님은 자신의 이단감별자격을 상실하고도 남습니다. 그런데 귀하의 악의적인 사실 왜곡은 다음 증거들에서도 계속 발견됩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것을...먼저는 형제회로부터, 그후에는 니 형제님으로부터 받았지만 우리는 아직도 그가 본 것들의 일부도 실행하지 못했다....모든 형제들과 자매들을 복음을 전파하도록 내보내라고 제안했다(교회의 사무. pp67-82). 복음을 전파하기 위해 성도들이 나가는 방법은 틀림없이 사람들의 집으로 가서 그들을 방문하는 것이다. (여기서부터 인용됨) 나는 우리 가운데서의 회복이 막다른 골목에 이르렀다는 것을 1984년에 완전히 깨달았다고 이따금 말해 왔다. 우리가 취해 온 방법을 단지 계속해서 실행해 갈 길은 없었다(인용 끝). 우리는 더 이상 계속할 수 없었다. 더욱이 오랜 세월이 지난 후 우리가 실행하고 있던 복음 전파의 방법이 완전히 신약 안에 합당하게 계시되어 있는 방법에 따른 것이 아니라는 것이 밝혀졌다"(위트니스 리, 교회봉사에 대한 대화, 한국복음서원, 1993, 10쪽).
누가 봐도 집회방식과 복음실행에 대해 말하고 있는 위 단락의 일부를 이영호 목사님은 자신의 글에서 최고봉의 진리를 설명하는 문맥 속에 슬쩍 끼워 넣으셨습니다(124쪽). 그 결과'실행의 변화'를 다루는 원래 문맥은 '진리적 가르침의 변화'를 말하는 문맥으로 졸지에 탈바꿈되었습니다. 이것은 누가 보아도 정직한 비평태도가 아닙니다.
이처럼 전혀 연관도 없는 두 세 군데의 본문들을 하나로 묶어 엉뚱한 이야기를 만들어 낸 후 그에 대해 반복하여 비판하고 정죄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그것이 고의든 실수이든 이런 반복된 허위 사실 유포행위는 이단감별 전문가를 자처하시는 이영호 목사님에게 큰 오점을 남기는 것입니다.
이러한 명백한 사실왜곡 외에도 이영호 목사님은 다음 사실들에 있어서 이단 감별사로서의 자질이 의문시되고 있습니다.
2) 오락가락 하는 계시의 최고봉의 메시지 시작 시기(1984년, 1994년)
이 목사님은 자신의 글 123쪽에서 "계시의 최고봉은 위트니스 리가 1994년부터 1997년 6월까지 그의 생애 말년 3년 6개월에 설파한 교리"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 뒤 130-131쪽에서는 한 설교자의 말을 억지로 최고봉 진리에 연결짓기 위해 "(이 내용은) 위트니스 리가 '계시의 최고봉'을 설파하기 시작한 해인 1984년에 행해진 설교"라고 말을 바꾸고 있습니다. 이것은 글 자체 내에 혼동과 모순이 있는 경우입니다. 참고로 1984년은 지방교회의 실행의 전환을 가져온 해이지 '계시의 최고봉'을 전한 시기가 아닙니다.
3) 엉터리 각주처리
이영호 목사님 논문에 사용된 총 각주 79개 각주 중 본문과 일치되는 것이 거의 없는 것이 이상합니다. 아마도 각주 번호가 하나 씩 뒤로 밀린 것으로 보입니다. 이것은 위트니스 리가 말한 것의 출처로 칼빈의 '구약성서 주석'이 제시되는 등 독자들에게 큰 혼동을 주고 있습니다. 또한 귀하는 위트니스 리가 '존 칼빈의 신학은 형편없는 것'이라고 말했다고 했지만 본문내용을 면밀히 검토해 본 바, 정작 이 말을 한 사람은 위트니스 리가 아니라 랑 캥거스 형제였습니다. 그는 장로교 계통의 프린스톤 신학교를 졸업한 위트니스 리의 동역자입니다. 이처럼 일치되어야 할 본문과 각주의 연결 또는 그 내용의 정확성이 매우 의문시되고 있습니다.
4) 글 인용 시 자신에게 불리한 본문 내용을 의도적으로 누락한 것은 부당함
이영호 목사님은 위트니스 리가 '우리는 하나님처럼 생겼다'라는 말을 비판하기 위해 그의 〈생명에 대한 기본공과〉책자 내용을 인용하셨습니다. 그런데 귀하는 "한 편으로는 하나님은 보이지 않으신다. 하나님은 보이지 않으시는 분인데 어떻게 하나님에게 모양이 있을 수 있는가? 이것은 우리 인간이 이해하고 설명하기 어려운 부분이다"라는 대목을 말 줄임 표시 없이 슬쩍 누락시킨 채 그 단락을 인용하고 있습니다(원본을 확인해 보시기 바랍니다).
"내적으로 하나님은 모든 속성과 미덕을 지닌 그분의 존재를 갖고 계시며, 외적으로 하나님은 모양을 갖고 계신다. (〈 〉부분 생략표시 없이 누락됨) 〈한 편으로는 하나님은 보이지 않으신다. 하나님은 보이지 않으시는 분인데 어떻게 하나님에게 모양이 있을 수 있는가? 이것은 우리 인간이 이해하고 설명하기에는 매우 어려운 부분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형상이 창세기 18장에서 볼 수 없는 분이셨다고 말할 수 없으며 그분께 어떠한 모양도 없었다고 말할 수 없다. (다시 〈 〉부분 표시 없이 누락시킴)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사람의 모양을 가지고 볼 수 있게 나타나셨다. 창세기 18장은 하나님이 사람의 모양을 갖고 계심을 보여준다.〉 사람의 모양은 하나님의 모양을 따른 것이다...(이 말 줄임 표시는 이영호 목사가 한 것임) 사람의 외적인 몸은 하나님의 모양을 따라 창조되었다"(121쪽).
이처럼 다른 부분은 말 줄임표를 사용했으면서 특정부분은 누락시킬 때 표시 없이 본문내용이 계속 이어지는 것처럼 한 것은 그 자체가 독자들을 속이는 행위입니다.
5) 단 한 줄만을 인용 비판함으로 글쓴이의 의도를 현저히 왜곡시킴
이영호 목사님은 자신의 글에서 "(위트니스 리가) 하나님의 모습을 사람의 모습과 일치시켜 사람이신 하나님은 그 나이가 이천 살 밖에 되지 않는다고 주장하는 것 등은 자의적인 해석에 불과하다"(123쪽)라고 비판했습니다. 이 글만 읽으면 위트니스 리가 마치 영원하신 하나님의 나이를 이천 살로 주장하는 것처럼 들립니다. 그러나 원래 문맥은 <사람이신 예수님>의 나이를 말하고 있습니다. 이것 역시 교묘한 사실 왜곡의 한 유형입니다.
"하나님은 시작도 끝도 없는 영원부터 영원까지 하나님이셨지만, (인용시작) 사람으로서의 하나님은 그 나이가 이천 살 밖에 되지 않는다(인용끝). 하나님이 사람되신 분인 예수 그리스도는 약 2천년 전에 태어나셨다. 하나님은 성육신으로 인성을 입으셨다. 어떤 사람들은 그분이 부활하고 승천하신 후에는 인성을 벗어버렸다고 생각한다. 그들은 주 예수님이 더 이상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이것은 틀린 생각이다. 주 예수님은 여전히 사람이시다."(성경 안에 있는 신성한 계시의 고봉에 따른 삶을 사는 실제적인 길, 58쪽).
6) 주장 논점이 모호함
이영호 목사님은 자신의 글에서 소위 '최고봉의 진리'에 관해서 (회복의 본질인) 워치만 니와 (그 본질을 바꿔놓은) 위트니스 리의 차이점을 입증하려는 것처럼 보입니다. 이것은 귀하가 워치만 니는 '여러분과 나는 다 하나님이 아니다'라고 말했다는 내용- 사실은, 위트니스 리도 '경배 받는 신격에 있어서는 우리는 하나님이 아니다' 라고 가르침으로 이 점에 두 사람은 전혀 차이가 없습니다- 을 자신의 결론 글로 인용하신 것에서도 엿보입니다.
그러나 귀하는 워치만 니의 〈새 언약의 비밀〉이라는 책자를 인용한 곳에서는, "워치만 니에 의하면 변화의 목적은 하나님을 닮음에 있는데 완전히 그와 같게 되는 것은 주님이 다시 오시어 나타나실 그때에 이루어진다는 것이다....이와 같은 워치만 니의 정의와 주장은 다음과 같은 결론에 이른다. 즉 "동형질이라는 것은 어떤 모형 속에 넣어 똑같게 찍어내는 것과도 같다"...(현대종교, 127쪽) 이러한 모든 워치만 니의 주장은 위트니스 리의 주장과 동일한 것들이다....(워치만 니가) "외적으로 말한다면 사람은 이미 하나님과 닮았지만 그 안에는 아직 하나님의 생명이 없었다"라고 주장한 것은 위트니스 리와 사실상 큰 차이가 없는 내용들이다"라고 함으로 두 사람이 동일한 주장을 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128쪽).
또한 귀하는 아래 글에서는 워치만 니와 위트니스 리가 '사람이 하나님 됨'에 대한 가르침에서조차도 본질적으로 차이가 없음을 밝히고 있습니다. "워치만 니도 2살 차이였던 위트니스 리처럼 옥고를 치르지 않고 92세를 살았더라면 그도 역시 위트니스 리와 같은 직설적인 표현-사람이 하나님이 된다-을 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워치만 니의 주장은 위트니스 리의 사상적 기초가 되어 있어, 결국은 위트니스 리처럼 그의 사상은 점진적인 발전을 해 직설적인 말을 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위트니스 리의 많은 서적은 실상 워치만 니의 설교를 강화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130쪽).
귀하가 결론적으로 워치만 니와 위트니스 리가 소위 신화에 대한 가르침에 있어서 다르지 않다고 말한 것은 사실을 정확히 보신 것입니다. 그러나 "두 사람(워치만 니와 위트니스 리)의 주장이 달라도 문제요 같아도 문제"(128쪽)라는 식으로 토를 달고 계신 것은 바른 비평 태도는 아닌 것으로 보입니다.
7) 불확실한 근거를 토대로 이야기를 발전시키는 습관이 있음
이영호 목사님은 A라는 가설을 근거로 B라는 결론을 내리고 또 이것을 임의로 C로 발전시켜 엉뚱한 말을 꾸며내는 습관이 있습니다. 우리가 앞서 지적했던 소위 '위트니스 리 인도 접경 거주' 가설이 그 좋은 예입니다. 이외에도 귀하는 이번 호 글 130쪽에서는 "스티븐 강이 위트니스 리가 '사람이 하나님이 된다'는 주장을 한 것을 정확히 간파하고 그것을 반박했다"라고 임의로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실은 귀하가 지적한 부분은 '주는 영이시니'라는 진리에 관련된 내용이었습니다. 귀하의 혼자 생각처럼 '사람이 하나님이 된다'는 진리와는 전혀 무관합니다. 그럼에도 귀하는 자신의 근거 없는 추측을 토대로 "스티븐 강이 보았듯이 워치만 니와 위트니스 리는 전혀 다른가?"라며 두 사람을 신화관련 글을 비교해 나갔습니다. 그러나 분명히 말씀드리지만, 1960년대에 약간의 접촉이 있던 것에 불과한 스티븐 강과 1994년부터 가르쳐진 '최고봉의 진리'는 그 시기로 보나 사실로 보나 아무런 연관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귀하는 부디 자신의 혼자 생각 속에서 허위 사실을 지어내는 일을 즉각 멈추시기 바랍니다.
8) 하나님의 형상을 말하는 것이 십계명 위반 죄라는 주장은 황당함
이영호 목사님은 자신의 글에서, "위트니스 리는 하나님의 형상을 밖에서 볼 수 있는 형상이 아니라 볼 수 없는 성정을 말하는 것이다....이 형상은 밖의 모양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안의 성정을 말하는 것이다'라고 말한다"(122쪽)고 했습니다. 그리고는 갑자기 귀하는 출애굽기 20장 4절을 근거로 "하나님은 십계명에서 하나님의 형상을 만드는 것을 엄격하게 금하고 있다"고 하시면서 "위트니스 리와 지방교회 주장은 십계명에 저촉된다"는 등 말도 안 되는 논리를 펼치고 계십니다(135쪽). 그러나 출애굽기 20:4 본문은 "사람의 손으로 만들 수 있는 형상"을 만들지 말라는 것이지 귀하가 지금까지 다뤄온 창1:26이 말하는 '하나님의 형상'과는 전혀 다른 이야기입니다.
'사람의 눈으로 볼 수 없는 성정으로서의 하나님의 형상'을 말하는 사람을 십계명의 제 2계명에 저촉된다고 억지를 쓰고, 더 나아가 하나님의 유일성을 부인한다고 말하는 것은 도를 지나친 비판입니다. 이런 식의 논리라면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형상'(고후 4:4)이라는 성경 본문, 더 나아가서 '하나님의 형상이신 그리스도 존재 자체'가 십계명 위반이 되고 말 것입니다.
이상의 증거들은 현대종교 사목의 직책에 있으신 이영호 목사님이 이단감별 전문가로서 그 양심관리와 학문적인 자질에 심각한 하자가 있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2. 쟁점이 된 진리들에 대한 간략한 반박
이영호 목사님이 자신의 글에서 문제 제기하신 성경 진리는 크게 볼 때 창1장 26절의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에 대한 정의'와 '사람이 하나님이 되는 소위 최고봉의 진리' 두 가지로 압축됩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린다면, 이 두 진리에 대한 위트니스 리와 지방교회측의 관점은 칼빈의 견해와는 다소 상이할지 모르나 그리스도인으로서의 기본신앙의 관점에서 전혀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즉 허용 가능한 이견일 뿐 한 쪽이 다른 쪽을 정죄할 문제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제 귀하가 제기하신 두 진리에 대해 '간략하게' 재 반박해 보겠습니다.
1) 창1:26의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은 과연 동일 개념인가?
결론부터 말하면, 칼빈은 '하나님의 형상(첼렘)과 모양(데무쓰)'이 '기본적으로 같은 의미의 반복적인 쓰임'이라고 보나 위트니스 리는 '유사하나 둘은 다른 개념'이라고 말합니다.
귀하는 칼빈도 그의 주석에서 "해석가들은 이 말(형상, 모양)의 의미에 관하여 의견이 일치하지 않는다" 라고 했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또한 귀하는 오토 J. 바압도 "이 말(형상, 모양)의 정확한 의미는 용이하게 정의하기 힘들다"고 말한다고 인용하고 했습니다(116쪽). 그렇다면 이처럼 신비한 비밀에 속하고 이견이 있는 주제에 대해 어느 한 쪽의 견해로 다른 쪽을 정죄하고 배척하는 것은 지나친 것입니다. 각자가 자신의 신앙 양심과 분별력을 따라 아멘이 되는 해석을 받아들이면 되는 일입니다. 따라서 이 영호 목사님이 지금처럼 이런 주제에 대해 자기 주장을 절대시하여 지방교회측을 함부로 판단하고 임의로 정죄해서는 안될 것입니다.
참고로 귀하는 "하나님의 형상은 하나님의 속성의 특성을 가리킨다. 사람 안에 나타난 하나님의 속성 중 가장 현저한 것은 사랑과 빛과 거룩함과 의로움이다"라는 위트니스 리 주장을 소개(120쪽)하면서도 이에 대해 이의를 달지 않았습니다. 다만 위트니스 리가 '보이지 않으시는 하나님이 형상과 모양을 가지신 것은 인간이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라고 하면서 창세기 18:2, 16-17, 사사기 13:9-10, 17-19, 22 등을 근거로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던 하나님'에 대해 언급한 것에 이의를 제기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귀하가 정작 해당 성경본문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제시하지 않고 침묵하시는 것은 매우 유감스러운 일입니다.
2) '사람이 하나님이 된다'는 '신화'(deification)는 구원론을 설명하는 한 방법임
'사람은 (경배의 대상이 되는 것을 의미하는) 신격(Godhead)에서는 아니며, 생명과 본성에서 하나님이 된다'로 정의되는 소위 '최고봉의 진리'는 엄격히 말하면 위트니스 리가 처음 주창한 것이 아닙니다.
누차 설명 드린 대로 이것은 교회 역사상 아타나시우스를 포함한 다수의 정통 교부들이 가르친 진리입니다. 동방정교회에서는 지금도 이 진리가 구원론의 핵심을 이루고 있는 것은 잘 알려져 있는 사실입니다. 따라서 만일 귀하가 이에 대한 위트니스 리의 가르침을 비난하려면 그보다 먼저 귀측이 정통교부로 인정하는 아타나시우스의 주장에 대해 비난하는 것이 순서일 것입니다. 그럼에도 귀측이 아타나시우스에 대해서는 침묵하면서 유독 위트니스 리 가르침에 대해 '하나님의 유일성을 부정한다'(135쪽)는 식으로 말하는 것은 공정하지 않습니다. 또한 이러한 진리에서 다뤄지는 요점들을 제대로 파악치 못하고 있음을 스스로 시인하는 것에 불과합니다.
개혁신학자인 안토니 후크마는 귀하와 달리 "우리가 최소한 원리적으로는 하나님처럼 될 수 있다"(54쪽)고 하고 "하나님과 같아지는 것이 성화의 궁극적인 목표"(59쪽)라고 말하고 있습니다(안토니 후크마, 개혁주의인간론, 기독교문서선교회, 1999). 그렇다면 미국 칼빈 신학교에서 오랫동안 조직신학 교수로 재직했던 안토니 후크마도 귀하의 기준으로는 '하나님의 유일성을 부인하는 사람'이 될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자기 발등을 찍는 일일뿐입니다.
참고로 귀하가 위트니스 리의 신화에 대한 가르침이 몰몬교와 같다는 말은 사실이 아니며 매우 무책임한 표현입니다. 예를 들어, 요셉 스미스는 일반 믿음과 달리 "하나님은 단지 높여진 사람(God was merely an exalted man)일 뿐이다"라고 말합니다. 또한 원칙적으로 몰몬교는 우리처럼 무소부재 하신 삼위일체 유일신 하나님을 믿지 않습니다.
또한 귀하는 1997도 출판물인 〈성육신. 포함. 강화〉에서, "우리가 '하나님의 신격'에 참여할 신성한 권리를 가지고 있다" 라고 한 대목을 들어 신화 진리 내용이 달라진 것처럼 주장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사실이 아니며 단지 영어 원문 'God's divinity'에 대한 번역과정에서 번역자가 그것을 '하나님의 신격'으로 잘못 번역한 것뿐입니다. 이것은 그 몇 줄 바로 밑에서는 "우리는 신격에서가 아니라(not in the Godhead) 생명과 본성과 표현에서 하나님이 될 권리를 갖고 있다"(위 책, 40쪽)라고 바로 말하고 있는 것으로도 알 수 있습니다(오역된 그 부분은 이후에 한국복음서원에서 출판된 전집류〈고봉메시지〉15권에 정정되어 삽입되었음). 'divinity'를 '신성'으로 'Godhead'를 '신격'으로 구분하여 사용하는 기존원칙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따라서 이영호 목사님은 이 점에 대해 다른 오해가 없으시기를 바랍니다.
이 기회에 우리는 언제 누구와도 공정하고 합리적인 자세를 갖춘 진리토론은 환영함을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그러나 지금처럼 허위 사실을 조작하고 그것을 문서로 확산시키므로 성도들에게 손상을 가하는 일에 대해서는 엄중 대처하고 적절한 조치를 취해 나갈 것임을 밝혀 둡니다.
아울러 우리는 월간 현대종교사와 이영호 목사님께 다음 사항을 이행하여 주실 것을 정중하게 요구합니다.
첫째, 귀측은 왜곡된 내용으로 위트니스 리와 전세계 지방교회들을 모함하고 근거 없이 비난하는 지금 같은 무모한 일을 즉각 중단하고 사과하십시오.
둘째, 귀측의 왜곡된 기사내용을 바로 잡고 독자들이 쌍방의 주장을 균형 있게 접할 수 있도록, 우리측의 항의서신 내용 전문(또는 핵심 내용 요약)을 빠른 시일 내에 귀측 월간 지면에 실어 주십시오.
우리는 앞으로도 최대한 인내하며 대화를 통해 이런 쌍방의 심각한 갈등을 해결하고자 노력할 것입니다. 그러나 귀측이 성경의 가르침을 좇아 그리스도인들 간에 대화로 갈등을 해결하려는 우리의 노력을 계속 외면한다면, 이로 인해 야기될 어려움들에 대한 일체의 책임은 전적으로 귀측에게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런 일들이 하나님의 선하신 중재 아래 원만하게 해결되길 희망합니다.
아울러 우리측의 위 두 가지 요구사항에 대한 귀측의 원칙적인 입장을 담은 성실하고 진지한 답신을 8월 31일까지 팩스로 보내주시고 원본을 우편으로 보내주실 것을 정중하게 요청합니다. 월간 현대종교사와 이영호 목사님에게 하나님의 은혜가 늘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주 안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