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화'(“계시의 최고봉”) 진리에 대한 지방 교회측의 반박 및 질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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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신인: 지방 교회측 진리변증위원회(DCP Korea) 2016. 11.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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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신화'(“계시의 최고봉”) 진리에 대한 지방 교회측의 반박 및 질의
안녕하십니까? 우리는 성경의 진리를 확증하고 빗나간 부분들을 변증함에 있어서 한국어권의 전 세계 지방 교회들을 대표합니다. 이 항의 서한은 월간 현대종교 2016년 11월호에서 다룬, 지방교회 <계시의 최고봉-“우리는 하나님이 된다네”>라는 제목의 기사에 대한 지방 교회측의 반응입니다.
예전에 귀 잡지는 현대종교 편집장을 역임한 바 있는 이영호 목사님(현재 ‘아레오바고사람들’ 대표)이 쓴 <지방 교회의 神人合一에 대한 비판 결정론-계시의 최고봉>이라는 제목의 논문을 현대종교 2000년 7월호부터 2004년 9월호까지, 총 8회에 걸쳐 소개한 바 있습니다. 이번 2016년 11월호 귀측 기사는 이 기존 논문 내용 중 일부를 원저자가 발췌 요약한 것을 귀측이 재차 기사화한 것으로 보입니다.
우리는 그 당시에도 이 논문에 담긴 지방 교회측 관련 내용 중 사실 왜곡을 포함한 여러 문제점을 조목 조목 지적하며 강력하게 항의한 바 있습니다. 그런데도 십 수년이 지난 지금 명백하게 모순된 내용들이 그대로 다시 기사화된 것을 보고, 귀측의 무성의한 편집 태도에 깊이 실망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아울러 이처럼 명백한 오류가 있고 편협한 시각으로 쓰여진 내용을 거듭 기사화 하는 것은 귀 월간 현대종교의 평판에도 악영향을 미칠 수 있음을 정중하게 지적하여 환기시켜 드리고자 합니다.
무엇보다 귀측 기사의 가장 아쉬운 부분은 ‘신화’(Deification)와 관련하여 ‘형상’과 ‘모양’의 바른 의미(창1:26) 규명에만 지나치게 몰입한 점입니다. 그러나 뒤에서 보겠지만, 귀측과 달리 교회 역사상 이 진리를 말했던 수많은 정통 교부들은 ‘성육신의 최종 목적이 무엇인가?’라는 기독론 내지는 구원론의 관점에서 ‘신화’를 다뤄왔습니다. 또한 정통 교부들은 이단을 논박하고 그들에게 속지 않을 방편으로 ‘신화’(神化) 진리를 설파했음에도 귀측은 정반대로 ‘신화’를 ‘이단 교리’로 간주하는 실수를 범하고 있습니다.
이제 귀측의 기사 내용의 문제점들을 조금 더 구체적으로 다뤄보겠습니다.
1. 여전히 오락가락하는 ‘계시의 최고봉’ 메시지 시작 시기 (1984년, 1994년?)
이영호 목사님은 "(위트니스 리가) 1994년(89세)부터 1997년(92세-사망)에 이르기까지 약 4년간 신인 합일의 결정론인 ‘계시의 최고봉 - 일명 이상의 최고봉’을 설파하고 타계했다.”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바로 뒷 문장에서는 “이 ‘계시의 최고봉’이라는 교리는, 1984년 수원시에서 있었던 한국 지방 교회(전국 제26회 특별집회)의 강사가 설파하기 시작하여, 전파돼 왔고 … .”라고 적고 있습니다(115쪽). 그런데 과거 자료에서는 “’계시의 최고봉’은 위트니스 리가 1994년부터 1997년까지 그의 생애 말년 3년 6개월 동안 전파한 교리로써 그의 생애 최후의 교리라고 할 수 있겠다”(2003년 7월호, 123쪽)고 말한 바 있습니다. 따라서 위 두 시점(1994년, 1984년) 중 어느 하나는 명백한 오류이고, 정황상 전자가 사실에 가깝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귀측은 2016년 11월호 관련기사 끝부분에서, “한국교계에서 이단시비가 끊이지 않은 때에 ‘계시의 최고봉’이라는 위트니스 리의 사상이 이미 1984년 한국에 상륙했다는 사실은 충격적인 뉴스로 다가온다.”라고 오락가락함으로써, 소위 “충격적인 뉴스”의 신뢰성을 스스로 허물고 있습니다. 이런 명백한 모순은 기사화된 ‘학술 논문’의 완성도가 현저히 떨어짐을 보여 주는 작은 창에 불과합니다. 그런데 이러한 논문의 완성도도 문제이지만, <특별기획논문>으로 보도했던 내용에 담겨있던 치명적인 오류를 십여 년이 지난 지금 그대로 다시 기사화했다는 점에서 현대종교 편집부도 이에 대한 책임에서 자유롭지 못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2. 위트니스 리가 말한 신화(神化)-소위 “계시의 최고봉”의 핵심 내용은 무엇인가?
이영호 목사님은 현대종교 위 문제의 기사에서 위트니스 리가 말한 “계시의 최고봉”(소위 ‘신화’ 교리) 내용을 다음과 같이 소개했습니다. 참고로 해당 부분은 위트니스 리의 <이상의 최고봉과 그리스도의 몸의 실제>(한국복음서원, 1994) 116쪽에서 인용된 것입니다.
② 사람이 하나님 되게 하심 - “하나님은 그분 자신을 생명으로서 우리를 거듭나게 하신 후에, 우리 안에서 계속적으로 그분의 생명의 영으로 우리를 거룩케 하고 새롭게 하며 변화시키는 역사를 하신다. 하나님이 사람되신 것은 육신이 되심으로 말미암은 것이다. 사람이 하나님 되는 것은 변화로 말미암는다. 우리는 거듭남과 거룩케 됨과 새롭게 됨과 변화와 형상을 본받음과 영화롭게 됨을 통해 하나님이 된다.”4) ③ 생명과 성품에서 우리는 하나님이다. - “내가 특별히 지적하고 싶은 것은, 사람이 하나님이 되는 것은 다만 하나님의 생명과 하나님의 성품이 있을 뿐 하나님의 신격은 없다는 것이다.”5)
우리는 위 위트니스 리의 ‘신화’에 대한 언급에 대해 두 가지를 강조하여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첫째, 위트니스 리가 말한 ‘계시의 최고봉’(신화)은 이영호 목사님의 심각한 오해와 달리, 피조물인 사람이 창조주의 지위를 얻게 된다는 말이 결코 아닙니다.
이 점은 위트니스 리가 “사람이 하나님이 되는 것은 다만 하나님의 생명과 하나님의 성품이 있을 뿐 하나님의 신격은 없다.”라고 한 부분에서 확인됩니다. 참고로 “하나님의 신격은 없다”라는 말은 ‘신화’된 ‘우리가 하나님처럼 경배의 대상이 될 수는 없다’라는 의미입니다. 왜냐하면 오직 창조주(성부, 성자, 성령)만이 영원토록 경배받을 자격이 있으신 참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행14:13-15).
둘째, 위트니스 리는 아래에서 보듯이 자신의 ‘신화’관련 주장이 “고대의 신학자들이 다 믿었던 것”과 같은 맥락의 것임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사람 되시고 사람이 하나님이 됨’은 고대에서 아주 성행했던 말이다. 그러므로 325년 아타나시우스는 니케아 공의회에서 “하나님이 사람 되신 것은 사람이 하나님이 되게 하기 위한 것이다(God became a man, that man may become god)”라고 말했다. … 내가 특별히 지적하고 싶은 것은, 사람이 하나님이 된다는 것은 다만 하나님의 생명과 하나님의 성품이 있을 뿐 하나님의 신격은 없다는 것이다. 이것은 기독교 안에 있는 어떤 교사도 반대할 수 없는 것이다(위의 책, 62-63쪽).
그런데 충격적인 사실은 이영호 목사님 역시 정통 교부인 아타나시우스도 위트니스 리와 똑같이 말한 것을 알고 있었다는 점입니다. 즉 우리의 요청으로 현대종교 측이 보내온 근거 자료 복사본에 따르면, 위트니스 리가 “사실 ‘하나님이 사람 되심은 사람으로 하나님 되게 하려 하심이라’는 말은 주후 325년 니케아 공의회에서 아타나시우스(Athanasius)가 했던 말이다.”라고 말한 대목(위의 책, 24쪽)에 논문 저자인 이영호 목사님이 밑줄을 긋고 그 옆에 꺾쇠 표시까지 해 놓은 것이 그 증거입니다.
따라서 두 가지 추정이 가능합니다. 만일 이 목사님께서 위트니스 리와 정통 교부인 아타나시우스가 같은 말(‘신화’)을 했지만 정통교부로 인정되고 있는 아타나시우스의 평판을 고려하여 한 사람만 “이단 교리” 전파자로 몰아갔다면, 이것은 학자적인 양심에 문제가 있음을 보여 준 것입니다. 만일 위 두 사람 모두 이단 교리 전파자라고 생각한다면, 이것은 자신의 진리 인식이 매우 제한적이고 치우쳐 있음을 스스로 인정한 셈입니다. 위 두 가지 경우 모두 영적으로 건강한 상태라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3. 지방 교회측이 ‘신화’에 대한 노래까지 만들어 부르고 있다는 지적에 대하여
귀측은 “현재 지방교회는, 위트니스 리가 작사한 “어떤 기적 어떤 비밀인가! 하나님이 사람되시고 사람이 하나님이 된다네!”라는 노래까지 만들어 부르는 실정이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이 내용은 정통 교부인 아타나시우스가 말한, “하나님이 사람되신 것은 사람이 하나님이 되게 하기 위함이다”라는 유명한 경구와 정확히 같은 내용입니다. 물론 그 외에도 아래에서 보겠지만 다수의 정통 신학자들이 유사한 표현을 한 바 있습니다.
4. 신화 진리를 가르친 아래와 같은 사례들을 어떻게 평가하는 것이 공정한가?
현대종교 측은 “한국 교회는 아직도 ‘계시의 최고봉’(신화)이라는 내용에 대한 폭넓은 이해가 부족하다고 보아” 이 기사를 싣는다고 밝혔습니다. 그러나 ‘폭넓은 이해’를 위해서는 당연히 기사에 포함되었어야 할 아래와 같은 내용들에 대해서는 침묵하고 있습니다. 이것이야말로 이 논문이 ‘신화’와 관련 된 핵심 내용을 놓치고 있다는 가장 강력한 반증입니다.
1) 동방 정교회:
“하나님께서는 인간들에게 분명하고 직접 말씀하신다. “내가 말하기를 너희는 신들이며 다 지존자의 아들들이라 하였으나”(시82:6, 요10:34). 우리는 그 음성을 듣고 있는가? 이 소명의 의미를 이해하고 있는가? 우리가 실제로 여행길에 있다는 것, 즉 신화(theosis)를 향한 길을 걸어가고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가? 인간들은 모두 신화를 성취하라는 이 특이한 소명을 가지고 있다. … “인간이 신이 될 수 있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인간이 되셨다”는 말은 모든 세대의 교부들과 신학자들이 되풀이하는 말이다. … 우리의 소명은 오직 하나, 성령 안에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신화이다”( 대니얼 B. 클린데닌, 동방정교회 신학, 은성, 1997, 284, 290-291쪽).
2)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스:
“(디모데후서 3:15-17을 인용하면서) 성경이 우리를 성화시키고 신격화시킨다.”(Cohortatio ad gentes, 9, PG8, 197c.) 유해무 교수는 이에 대한 해설에서, “그는 하나님의 말씀이 인간이 되신 것은 인간이 어떻게 하나님이 될 수 있는가를 우리에게 알게 하심이라고 했다”라는 말을 추가로 소개하고 있다(유해무, 신학: 삼위일체 하나님을 향한 송영, 272쪽, 각주 37 참조).
3) 이레니우스:
“그는 끝없는 사랑 때문에 우리의 존재가 되셨고, 그리하여 그는 우리를 온전하게 만들어 그의 존재가 되게 하셨다”(Irenaeus, Adv. Haer. 5. 서문참조).
4) 아타나시우스:
“그가 인간이 되신 것은 우리로 신이 되게 하시기 위함이다”(Athanasius, de Inc, 54, 3). “성령께서 우리를 신적으로 만드시기 위하여 하나님이되셔야 한다”(Athanasius, ad Serap. I. 24: III, 3). 아타나시우스 신학의 핵심은 하나님께서 이룩하신 구원이다. … 하나님께서 인류를 구원하셔야 죄와 사망에서 확실하게 구원하시고, 하나님의 형상을 바로 회복시키시며, 또 사람을 신화(神化, deification) 시키실 수 있다. 그러므로 구원자는 반드시 하나님이셔야 하고 피조물일 수 없다(서철원, “아따나시오스 신학”, 101쪽, 김석환, 교부들의 삼위일체, 94쪽). “그리스도는 먼저 자기의 몸/육신을 신격화시키고, 이에 기초하여 성도들을 신격화시킨다”(유해무, 위의 책, 253쪽).
5) 바실(혹은 바실리우스):
“남들을 신격화한 이가 어찌 신성을 결여하겠는가?”(Adversus Eunomium, 3, 5, PG29, 665C).
6) 신학자 그레고리(혹은 그레고리우스):
“하나님인 그는 대치적인 두 요소, 즉 육과 영의 연합을 취하시는 형태로 오셨다. 이 중 후자는 신격화를 수여하고, 전자는 신격화된다. 오 새로운 혼합! 오, 역리적(逆理的)인 결합!”(Oratio, 38, 13, PG36, 325B-C).
7) 고백자 막시무스:
“인간은 본질로는 피조물이지만, 은혜로는 하나님의 아들이요 성령을 통하여 하나님이 된다”(Ambiguorum liber, PG91, 1345D).
8) 아우구스티누스:
“참 하나님께서는 자기를 믿는 자들을 신들로 만드시며, 그들에게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다. 그러므로 그분은 하나님이 되시지 않았으니 참 하나님이시요, 반면에 우리는 참 하나님이 되지 않으며 인간이 만든 신들보다는 낫다. … 우리의 내면의 눈을 조명하심으로써 우리를 신들로 만드셨다”(Enarratio in Psalmum, 94,6, PL 37, 1221).
위와 같은 정통 교부들 외에도, 비록 ‘신화’라는 용어를 사용하지는 않았지만 유사한 내용을 언급한 사람 중 일부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9) 개혁 신학자인 안토니 후크마:
"우리가 최소한 원리적으로는 하나님처럼 될 수 있다. 바울은 에베소서 5:1을 전후로 해서 어떤 면에서 우리가 하나님과 같아질 수 있는가에 관해 기술하고 있다. … 우리가 앞서서 살펴본 구절들에서처럼, 여기서도(엡4:23, 5:2를 가리킴) 하나님을 닮는 일이 우리가 마땅히 힘써야 할 과정인 것으로 묘사되고 있다".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온전한 형상이시기 때문에 그리스도와 같아진다는 것은 곧 하나님과 같아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렇게 그리스도와 하나님을 온전히 닮는 것이 우리의 성화의 궁극적인 목표"이다(개혁주의 인간론, 기독교 문서선교회, 1999, 54-55쪽, 59쪽).
10) 베리마티 커케년:
미국 풀러 신학교 조직신학 교수이자 루터 신학에 정통한 베리마티 커케년 교수는 루터 교단과 동방 정교회 그리고 로마 천주교의 구원론을 신화와 칭의의 관점에서 비교 연구한, <One with God: Salvation As Deification and Justification>이란 책을 펴낼 만큼 이 주제에 대한 전문가입니다. 그는 수 년 전에 풀러 신학교가 지방 교회측의 진리를 검증할 때 주도적으로 참여한 바 있고, 지방 교회측의 신화 진리는 정통에 해당한다고 평가한 바 있습니다.
11) 조병수 박사:
합동신학대학원대학교 총장인 조병수 교수님은 1996년 12월 염광교회 성탄절 설교 시 다음과 같은 내용의 신화 진리를 성도들에게 소개한 바 있습니다. “이레니우스가 깊은 연구 끝에 발견한 사실은 박해와 이단을 이기는 길 가운데 하나가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을 이해하는 데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인간의 육체로 오신 성육신의 의미를 바로 이해할 때 그리스도인들은 박해와 이단을 이길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이레니우스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를 가지고 오신 것이 어떤 의미를 가지는가에 대하여 깊이 생각하였습니다. 그리고 이레니우스는 다음과 같은 결론에 도달하게 되었습니다. "그가 우리와 같이 되신 것은 우리가 그와 같이 되기 위함이다"(Irenaeus, adv.haer. 5권 서론). 우리는 이 말을 조금 깊이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아타나시우스는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 앞에서 신자의 진정한 신분이 무엇인가를 발견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은 우리를 신적인 존재로 만든다. 인간의 철저한 승귀! 바로 이것이 초대교회의 성도들이 고난을 당하며 이단을 만날 때 고난과 이단을 이기고 극복할 수 있었던 성육신 사상입니다”(http://gensdei.org 해당 설교 참조).
12) 유해무 박사:
유해무 교수님은 고려 신학대학원이 허락한 두 차례에 걸친 연구년(1999, 2006년) 동안에 자신이 연구한 결과물을 <신학: 삼위일체 하나님을 향한 송영>(성약 출판사, 2007)으로 출판한 바 있습니다. 그는 이 책 머리말에서 이 책의 일부를 차지하는 신격화(deification) 주제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적고 있습니다.
"이 글은 서방 교회의 몰이해와 악의적인 비판으로부터 고대 동방 교회의 신학의 일면을 변호할 목적을 지니고 있다. 동시에 신격화의 내용 또한 개신교의 구원론보다 더 포괄적이며, 더 풍성하다는 확신을 담고 있다. … 신격화는 결코 물리학적이고 형이상학적인 신화(神化)가 아니라, 삼위 하나님께서 인간이 자기를 닮게 하시는 사역이다. 사람의 영광은 하나님이요, 하나님의 지혜와 능력의 그릇은 인간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볼 때 이 주제(신화-필자 주)는 다른 주제들과 마찬가지로 고대 동방 신학의 일관된 관심사요 주제로서 본서에서 당당히 자리를 차지할 수 있다(10-11쪽).
이어서 유 교수님은 ‘신화’ 관련 글 결론 부분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신격화는 애초부터 성자의 사역으로 인정되었다. 즉 신격화는 성경의 가르침을 따라 성육신에 기초하고 있음을 교부들은 분명하게 파악하고 있었다. … 우리는 신격화가 성경의 기초를 충분히 지닌 고대 교회의 유산임을 확인한다. 신격화의 개념을 개혁 신학과 신앙생활에 도입할 필요성이 크며 도입한다고 하더라도 별다른 혼란이 없을 것이다. … 성령 하나님의 구원 사역의 핵심을 우리는 신격화라는 고대 교회의 용어로 요약할 수 있으며, …. 아타나시우스와 카파도키아 교부들은 이 신격화를 소재로 삼아 삼위일체 하나님을 신학 하였다. 신학은 삼위일체 하나님을 향한 송영이다. 신격화도 삼위일체 하나님을 향한 송영의 소재이다”(위의 책, 267, 270쪽).
13) 옥한흠 목사:
전 사랑의 교회 담임이었던 고(故) 옥한흠 목사님도 <하늘 행복으로 살아가는 작은 예수>(국제제자훈련원, 2001)라는 책을 펴냈습니다. 아울러 2004년 4월 14일 부활절 연합예배에서 그는, “그리스도를 닮는 것에 지날 것이 아니라 예수가 돼야 한다, 그리스도가 돼야 한다, 진정한 구원은 예수가 되는 것이다.”라고 설교한 바 있습니다. 그는 또한 <이것이 목회의 본질이다>라는 책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한국의 모든 목회자가 삶의 목표를 예수님에 두고 그분처럼 되어보겠다고 신앙생활을 했다면, 오늘날 이렇게 부패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천만 가까이 되는 한국교인들이 예수처럼 되는 데에 목표를 두고 신앙생활을 했다면, 오늘날 한국교회가 이렇게 사회에 악영향을 끼치지 않았을 것이다. 정치가 이렇게 썩지 않았을 것이다. 거짓말 안 하면 통하지 않는 사회가 되지 않았을 것이다”(옥한흠, 이것이 목회의 본질이다, 국제제자훈련원, 2004년, 64쪽).
귀측은 ‘신화’에 대해서 위트니스 리와 동일하거나 유사하게 말한 위 신실한 성경 교사들과 존경 받는 목회자들을 어떻게 평가하는 것이 공정한지 진지하게 주님 앞에 가져가 보시기 바랍니다.
5. 이영호 목사님 반증에 대한 지방 교회측의 재반론
이영호 목사님은 문제의 논문에서 위트니스 리가 말한 ‘최고봉의 진리’(신화)에 대하여 세 가지 반증 의견을 소개한 바 있습니다. 그것에 대해 재반론해 보겠습니다.
1) “반증1 워치만 니 입장”에 대한 지방 교회측의 재반론
논문 저자는 <워치만 니 전집> 제 27권(한국복음서원, 1994)을 근거로 워치만 니가 ‘자신은 물론 다른 사람들도 하나님이 아니다’라고 했다는 점을 인용 소개했습니다. 아마도 이것은 워치만 니와 위트니스 리는 신화에 대하여 다르게 말한다는 점을 지적하려는 의도로 보입니다.
그러나 논문 저자는 큰 착각을 하고 있습니다. 즉 워치만 니는 주 예수님께서 삼위일체의 제 2격이심으로 그분만 ‘신격’을 소유하심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위트니스 리와 다를 것이 전혀 없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위트니스 리 역시 우리는 결코 경배의 대상이 되는 신격을 가질 수 없다는 점을 반복해서 강조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대신에 우리는 동방 교부들의 표현처럼 ‘(신격에서는 아니지만) 생명과 본성에서 하나님이다’라고 말한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워치만 니와 위트니스 리는 다르지 않습니다.
이 점은 다음과 같은 논문 저자 본인의 말로도 입증됩니다.
"워치만 니에 의하면 변화의 목적은 하나님을 닮음에 있는데 완전히 그와 같게 되는 것은 주님이 다시 오시어 나타나실 그때에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또한 그는 말하기를 “주님이 오실 때 우리는 반드시 그와 같이 되며 또한 반드시 그의 참 형상을 볼 수 있게 된다”(요일3:2). … "워치만 니도 2살 차이였던 위트니스 리처럼 옥고를 치르지 않고 92세를 살았더라면 그도 역시 위트니스 리와 같은 직설적인 표현-사람이 하나님이 된다-을 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워치만 니의 주장은 위트니스 리의 사상적 기초가 되어 있어, 결국은 위트니스 리처럼 그의 사상은 점진적인 발전을 해 직설적인 말을 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 위트니스 리의 많은 서적은 실상 워치만 니의 설교를 강화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현대종교, 2003년 7월호(이영호 목사 특별기획 논문), 127-128, 130쪽).
위에서 보듯이 논문 저자는 앞에서는 워치만 니는 위트니스 리와 ‘신화’에 대해서 다르게 가르친다고 주장 하다가, 뒤에 가서는 두 사람은 신화에 대해 같은 표현을 할 수밖에 없다는 점을 애써 강조하고 있습니다. 제대로 된 학술 논문을 써 본 사람이라면 이처럼 자기 논리를 스스로 부정하는 논문에 어떤 의미있는 가치를 부여하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2) “반증2 신학자들의 견해”와 “반증3 오토 J. 바압의 <구약성서신학>”에 대한 지방 교회측의 재반론
논문 저자는 반증2와 반증3에서 창세기 1장 26절의 ‘형상’과 ‘모양’은 같은 개념을 반복한 것이라는 칼빈의 견해, 그리고 이러한 칼빈의 견해 혹은 같은 취지를 자신의 책에서 인용 소개한 다른 신학자들(이장식 박사, 박봉랑 교수 등)의 의견을 장황하게 소개하고 있습니다. 한 마디로 위트니스 리는 형상과 모양을 다른 개념으로 말했지만, 둘은 같은 의미라는 주장을 하고 싶은 것입니다.
그런데 논문 저자는 또한 자신의 논문에서 "해석가들은 이 말(형상, 모양)의 의미에 관하여 의견이 일치하지 않는다"라는 칼빈의 말과 "이 말(형상, 모양)의 정확한 의미는 용이하게 정의하기 힘들다"고 말한 오토 J. 바압의 말을 인용 소개하고 있습니다(월간 현대종교, 2003년 7월호, 116쪽).
그렇다면 이처럼 학자마다 의견이 “일치되지 않고”, ‘정확한 용어 정의가 힘든’ 개념을 근거로 자신의 말은 절대적으로 옳고 자기와 다르면 이단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균형 잡힌 신학자의 태도라고 보기 어렵습니다.
지금까지 본 것처럼 귀 해당 잡지에 요약 소개된 이영호 목사님의 논문은 논리 전개에 무리가 있고 신화 진리에 대한 정통 교부들의 주장을 전혀 다루지 않은 채, 편협한 시각으로 함부로 그것을 이단시한 것이 명백하게 밝혀졌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이영호 목사님과 현대종교 측에게 다음 사항을 질의 및 요청합니다.
1. 귀측은 “하나님이 사람 되심은 사람이 하나님이 되기 위함이다”라고 말한 정통교부 ‘아타나시우스’도 이단이라고 생각하십니까?
2. 귀측은 ‘신화'를 구원론의 핵심적인 진리로 가르치고 있는 ‘동방 정교회’도 이단이라고 생각하십니까?
3. 귀측은 유해무 교수님, 조병수 교수님, 옥한흠 목사님의 위 신화 관련 표현들에 대해서 심층 취재 및 추가 기사화를 통해 이 주제를 한국 교계 앞에 공론화하실 의향은 없으신지요? 만일 이 주제에 대하여 공식 토론이 이뤄질 경우 지방 교회측도 적극 참여할 의사가 있음을 밝혀둡니다.
4. 지방 교회측은 자체 신학 저널인 <확증과 비평>(Affirmation & Critique)지 2002년 10월호에서 신화(Deification) 특집호를 펴낸 바 있습니다(http://www.affcrit.com/archives/ac_02_02.html). 따라서 이영호 목사님을 포함하여 누구든지 지방 교회측의 신화 진리를 비판하려면, 이 논문들을 토대로 하시기 바랍니다.
5. 우리는 본 반론문을 가능한 시일 내에 귀측 지면에 게재해 주실 것을 정중하게 요청합니다.
그럼 안녕히 계십시오. 지방 교회측 진리변증위원회
첨부: 월간 《현대종교》 편집인 이영호 목사에게 드리는 공개 질의(2004년 9월)
https://www.localchurch.kr/26046
누가 되었든지 진리를 다루는 일은 엄중한 문제입니다. 특히 진리로 다른 그리스도인들을 공개적으로 정죄하는 쪽은 최선을 다해서 성경과 주님의 의도를 살피고, 역대로 이런 주제들이 어떻게 말해져 왔는지에 대한 철저한 사전 연구가 요구됩니다. 더구나 그것이 신학논문 형태를 가질 경우는 더 말할 필요가 없습니다. 이런 점에서 이영호 목사님의 학술논문을 요약 소개한 위 현대종교 해당 기사는 아쉬운 대목이 너무 많습니다. 이런 공방을 통해서 양측은 주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모든 것이 허용된다고 하여 모든 것이 유익한 것은 아니며,
모든 것이 허용된다고 하여 모든 것이 사람을 건축하는 것은 아닙니다."(고전10: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