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긍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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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긍휼
시 간 : 1947년 9월 5일
장 소 : 복주(福州)
모든 것이 하나님의 긍휼에 달려 있음
로마서 9장을 읽을 때, 우리는 그 안의 원칙과 적용을 주의해야 한다. 이 장이 계시하는 원칙은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의 긍휼에 달려 있다는 것이다. 사도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이 원칙을 적용시킨다. 그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발생한 모든 일이 다 하나님의 긍휼에서 비롯된 것임을 우리로 보게 한다. 오늘 우리는 단지 적용의 실제만을 주의할 것이 아니라 더욱더 그 배후에 있는 원칙을 주의해야 한다.
성경은, 『원하는 자로 말미암음도 아니요 달음박질하는 자로 말미암음도 아니요 오직 긍휼히 여기시는 하나님으로 말미암음이라』고 말한다(롬 9:16). 열심과 추구가 유용하지 않으며, 열심 내지 않고 추구하지 않는 것 또한 유용하지 않다. 오래 앙망하든 앙망하지 않든, 아주 빨리 달리든 아주 느리게 달리든, 여기에 있든 저기에 있든, 많이 듣든 적게 듣든, 이런 것들은 모두 유용하지 않다. 모든 것은 하나님의 긍휼에 달려 있다. 오직 성령만이 사람을 정확한 위치에 이르도록 인도할 수 있다.
아무튼 당신은 언젠가 한 번은 하나님의 긍휼이 무엇인지를 보아야 하며, 이 일에 대하여 최소한 한 번은 당신의 눈이 열려야 한다. 많이 볼 수 있다면 좋겠지만, 그러나 최소한 한 번은 모든 것이 하나님의 긍휼에 달려 있음을 전일하게 보아야 한다. 당신이 한 번 보았든 혹은 일련의 과정을 거치고 나서 깨달았든, 당신은 곧 느낌이 아닌 하나의 사실을 만지게 되는데, 이 사실은 바로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의 긍휼에 달려 있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긍휼은 하나의 사실이며, 사실은 느끼는 것에 달려 있지 않다. 거듭남으로써 구원 얻는 것을 예로 들어 보자. 우리는 종종 죄인에게, 『당신은 반드시 한 번은 분명히 회개하고 주님을 믿어야 합니다.』라고 말하며, 믿는이에게는, 『당신은 반드시 한 번은 분명하게 자신을 주님께 헌신해야 합니다.』라고 말한다. 하나님의 긍휼에 대한 사람의 인식에 있어서도 원칙은 동일하다. 아무튼 사람은 반드시 한 번은 분명하게 하나님의 긍휼을 만나야 한다.
생각과 감정과 의지가 처리되어야 함―성령의 징계 아래 조절됨
하나님의 다루심을 받아야 할 세 종류의 사람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의지가 강한 사람과 감정이 강한 사람과 생각이 강한 사람이다. 많은 사람들이 이러한 세 가지 상태에 의해 지배되는데, 이 세 가지는 하나님에 의해 파쇄되어져야 한다. 하나님은 사람의 약점을 다루시는 것 못지않게 사람의 강한 점을 다루고자 하신다. 왜냐하면 때로 사람의 강점은 그의 약점보다 더 그의 영적 생명의 진보를 가로막기 때문이다. 사람이 이 세 방면에서 처리받은 적이 없다면 하나님의 긍휼을 인식할 수 없다.
사람이 하나님에 의해 처리받으면, 그의 영적 생명에 있어서 조절될 것이다. 많은 일에 있어서 지나친 것과 미치지 못한 것은 모두 적합하지 않다. 어떤 사람은 너무 오래 기다리고 어떤 사람은 너무 기다리지 않는다. 이러한 것들은 모두 조절되어야 한다. 어떤 사람은 그의 속사람은 충분히 강하지 않은데 겉사람은 너무 강하다. 이것은 마치 사람의 머리가 몸의 칠 분의 일을 차지해야 하는데, 사 분의 일을 차지하거나 혹은 십육 분의 일을 차지하여 적합하지 않은 것과 같다. 어떤 사람은 생각이 너무 강하고, 어떤 사람은 감정이나 의지가 너무 강한 반면에 속사람은 충분히 강하지 않다. 이러한 상태는 모두 조절되어야 한다.
언젠가 내지 선교회의 인도자와 함께 나는 스팍스(T. A. Sparks)의 설교를 들으러 간 적이 있다. 설교가 끝난 후에 사람들은 보통 방금 전의 메시지가 어떠했는지를 묻는다. 그러나 나는 그와 함께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그에게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그러자 먼저 그가 스팍스는 의지가 매우 강하다고 말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나는 그에게 나의 의지 또한 매우 강하다고 말했다. 베이커(Baker)라는 이 지도자는 『어떻게 당신은 그와 함께할 수 있습니까?』라고 물었다.
의심할 바 없이 외면의 의지가 강한 사람일수록 다른 사람과 손발을 맞추기가 더욱 어렵다. 그러나 그는 우리가 하나 될 수 있는 것이 속사람으로 말미암은 것이지 바깥 의지로 말미암은 것이 아님을 몰랐다. 오늘날 우리 속사람이 겉사람과 잘 어울리려면 반드시 속사람이 자라야 한다. 속사람이 자라면 겉사람을 다스릴 수 있다.
어떤 사람들은 생각이 너무 강하다. 그들의 생각 또한 속사람의 통제하에 있어야 할 필요가 있다. 나는 신약을 수백 번 읽었다. 내가 누구보다 더 많이 읽었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많은 사람들보다는 더 많이 읽었다고 말할 수 있다. 나는 거기에서 백여 군데의 문맥이 서로 모순되는 것을 찾아낼 수 있었다. 그러나 내 생각이 성령의 통제 아래 있었으므로 나는 그런 일을 하지 않았다.
만일 우리의 영적 생명이 적절하게 조절되기 원한다면, 우리의 상태가 너무 지나치거나 못 미치지 않도록 적당히 조절되는 것이 필요하다. 이것은 마치 핀볼(pinball) 게임기를 치는 데 있어서 공을 꼭 맞게 잘 보내야만 점수를 받을 수 있으며 그렇지 않으면 핀이 좌우에 있게 되는 것과 같다. 영적인 노정에는 많은 올무가 있는데, 우리의 생각과 감정과 의지는 모두 방해물이 될 수 있으며, 우리가 너무 지나치거나 미치지 못하면 위험에 떨어질 수 있다.
모든 것은 하나님의 긍휼에 달려 있다. 나는 구원받기 전에 미국으로 유학갈 계획을 하고 있었다. 만일 두 달만 일찍 갔더라면 여자도(余慈度) 자매를 만나지 못했을 것이며, 아마 영원히 구원받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설령 후에 기회가 있더라도 반드시 꼭 믿을 수 있었으리라고 장담할 수 없다. 하나님의 긍휼이 나로 이르지도 않고 늦지도 않은 적시에 여자도 자매를 만나게 하셨다.
오직 하나님만이 유익하도록 아주 적절하게 역사하실 수 있다. 우리 사람의 말은 너무 지나치거나 부족하기가 쉽다. 누구도 각종 사람의 필요에 꼭 맞은 메시지를 전할 수 없으며, 심지어 사도 바울이나 베드로라 할지라도 마찬가지이다. 말을 언제나 유익하고 적절하게 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에 사람의 오해를 불러일으키기가 쉽다. 오직 하나님의 긍휼만이 능히 사람으로 진정 겸손하게 할 수 있다. 때로 작은 십자가와 작은 다루심은 도리어 사람으로 교만하게 한다. 오직 큰 십자가와 큰 다룸만이 사람으로 겸손하게 할 수 있다.
어떤 사람은 지나치게 영적이어서 주님이 오직 우리의 영 안에만 계신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에베소서 3장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께서 우리 마음에 계신다고 말한다(엡 3:17). 그분은 단지 우리의 영 안에 계실 뿐 아니라 더욱더 우리의 마음 안에 거주하시는데, 이것은 뭔가 느낄 수 있는 것이다.
요한복음 15장은 그리스도가 믿는이 안에 거하신다고 할 뿐(요 15:4-5) 우리의 마음에 계신다고 말하지는 않는다. 오직 에베소서 3장만이 그리스도가 우리의 마음에 계신다고 말하고 있다. 어떤 사람은 지나치게 영적이어서 마음을 하찮은 것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많은 시편이 우리의 마음을 말하고 있다. 영적인 일에서 조절되기 위해서 우리는 부단히 영을 주의해야 하며 또한 우리의 마음을 주의해야 한다.
교회의 길―하나님의 긍휼을 앙망함
지난 이천 년 동안 교회의 길은 바로 하나님의 긍휼을 앙망하는 것이었다. 오직 하나님의 긍휼만이 우리를 조절할 수 있다. 나는 항상 청년들에게, 『오 년 후에야 당신은 비로소 모든 것이 하나님의 긍휼에 달려 있음을 알게 될 것입니다.』라고 말한다.
평균적으로 각 사람은 약 십 사 만 개의 머리카락을 갖고 있다. 성경은 그분이 각 사람의 머리카락을 모두 세신다고 말한다. 하나님은 우리가 자신을 알고 있는 것보다 더 분명하게 우리를 알고 계신다.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고자 하시면 우리는 구원받을 수 있으며 만일 하나님의 긍휼이 없다면 한 사람도 구원받을 방도가 없다.
한번은 무디(D. L. Moody)가 복음을 전하는데, 한 부인이 거의 구원받게 되었는데 단지 양산이 떨어져서 방해하는 바람에 그녀는 구원을 받을 수 없었다. 사람이 구원받고 안 받는 것은 전파자의 책임이 아니다. 전파자의 책임은 다만 길을 제시해 주는 것이다. 오직 하나님의 긍휼만이 사람을 이 길 위에 둘 수 있다. 사람을 이 길 위에 두는 것은 하나님의 일이며, 사람을 이끌어 이 길을 걷게 하시는 분 또한 하나님 자신이다.
워치만 니
[워치만 니 사역 재개 메시지 기록(上), "하나님의 긍휼", 한국복음서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