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치만 니와 위트니스 리가 보았던 성경 진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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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치만 니와 위트니스 리가 보았던 성경 진리들
동역자였던 워치만 니와 위트니스 리는 수백 권의 경건 서적을 펴낸 신실한 성경 교사들 입니다. 그 책들은 현재 온라인 상에 무료로 공개되어 있습니다. 성경은 만물이 주님의 뜻을 위해 창조되고 존재한다고 말합니다(계4:11). 따라서 워치만 니와 위트니스 리는 공통적으로 ‘하나님의 뜻이 이 땅에 이뤄지는 것’을 매우 관심했습니다(마6:10).
하나님의 뜻은 압축하여 설명한다면 <모든 긍정적인 것들의 실재이신 그리스도>와 <그분의 충만인 그리스도의 몸>입니다. 이것은 다음 말씀에 근거합니다.
“이런 것들은 장래 일들의 그림자이며, 그 실체는 그리스도께 속한 것입니다’(골2:17)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건축할 것이니”(마16:18)
“교회는 그의 몸이요 만물 안에서 만물을 충만케 하시는 분의 충만입니다”(엡1:23)
“온몸은 (머리이신) 그분에게서 나온 그 풍성한 공급을 해 주는 각 마디를 통하여 그리고 각 지체가 분량에 따라 기능을 발휘하는 것을 통하여 함께 결합되고 함께 짜여집니다. 그래서 몸이 자람으로써 사랑 안에서 스스로 건축되는 것입니다.”(엡4:16)
위 말씀들이 이 땅에서 실제적으로 성취되려면 다음 세 가지가 충족되어야 합니다.
1. ‘공급하는 마디들’
위 본문이 말하는 공급하는 마디들은 오늘날의 ‘참된 목회자들’을 포함하여 상대적으로 생명이 더 성숙한 사람들입니다. 이것은 주관적인 십자가와 부활의 체험을 통한 영적 생명의 성숙에서 오는 자연스러운 결과이지 결코 신학과정 이수 등 인위적인 절차와 자격증 취득으로 얻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이런 점에서 위 두 성경교사는 <계급적 의미의 성직자 평신도 제도>는 몸의 건축을 방해한다고 보았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많은 분들의 오해처럼 지체들의 기능상의 차이마저 무시한 채 ‘너나 나나 다 똑같다’는 식의 주장을 한 것은 아닙니다.
즉 사도 바울처럼 태도에서 “우리 자신이 예수님을 위하여 ‘여러분의 노예’가 되었다”(고후4:5)라고 말할 수 있는 겸손이 있고, 기능에서 “성도들을 온전케 하여.. 그리스도의 몸을 건축 하도록”(엡4:12) 돕는 ‘공급하는 마디들’은 반대할 이유가 없습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이런 참된 주의 종들이 얼마나 있는가가 문제입니다.
2. 각 지체들의 기능발휘
두 성경 교사는 오늘날 그리스도의 몸의 건축은 ‘한 달란트’ 받은 성도 각 사람이 자기 은사를 땅에 뭍지 않고 장사하도록 돕는 일에 달려 있음을 보았습니다 (마25:24-27, 골1:28). 즉 그들은 몸이 건축되려면 소위 ‘평신도들’(그러나 이런 평신도 개념은 성경에 없는 것임)이 자신들 안에 있는 생명의 기능을 사장시킨 채 교회 인도자만 바라보는 구조와 습성을 바로 잡아야 함을 보고 이를 실행하는데 충성을 다해 수고했습니다.
워치만 니는 주로 이에 대한 성경의 계시를 해방했다면 위트니스 리는 그 계시를 토대로 실제적인 제도와 관행을 바꾸는데 주력했습니다. 즉 특정인 뿐 아니라 모든 성도가 <생(낳고), 양(기르고), 교(가르치고), 건(건축함)> 할 수 있도록 돕고 훈련시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오늘날 소위 지방교회들 내에서 고린도전서 14장에 따라 모든 성도들이 일주일 내내 설교(신언) 준비를 한 후 주일날 각자가 2-3분씩 하나님 말씀을 말해 내는 틀로 바뀐 것은 수 십년의 연구와 시행 착오를 거친 결과입니다. 워치만 니도 생존 당시 이것을 강조했으나 그 당시에는 여러가지 여건이 성숙되지 못해 실행하지 못했습니다.
3. 그리스도 자신의 충만
성경은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를 만물을 충만케 하시는 분인 그리스도 자신의 충만이라고 정의합니다(엡1:23). 따라서 하나님의 뜻인 그리스도의 몸이 실제적으로 세워지려면 예수 믿는 각 사람이 “믿음의 하나에 이르러야 하고” “하나님의 아들에 관한 온전한 지식에서의 하나에 이르러야 하며” 영적 생명이 자라서 “그리스도의 충만한 신장의 분량에 이르러야” 합니다(엡4:13).
이것은 우리 각 개개인의 존재 안에 있는 옛사람의 요소는 점점 씻겨지고 새사람의 요소이자 의와 거룩의 요소인 그리스도 자신이 증가되는 체험을 요구합니다. 이러한 일은 성경지식이나 신학 교리만으로 되지 않습니다. 오직 주님 자신이 우리 마음에서 만유가 되실 때까지 우리 안에 이미 들어차 있는 타락의 산물들인 온갖 우상들과 대치물들이 제켜지고 빠져나가는 실제적인 변화가 있어야 합니다(롬12:2, 고후3:18).
이러한 변화를 체험하도록 위 두 성경 교사는 ‘내주하시는 그리스도’(골1:27)와 ‘그리스도가 우리 안에서 사심’(골1:21)을 매우 강조했고 이 주제가 그들의 책 내용의 상당 부분을 차지합니다.
결론적으로,
워치만 니와 위트니스 리는 머리이신 그리스도의 공급과 다스림 아래 있는 각 마디의 공급과 각 지체들의 기능 발휘를 통하여 그리스도의 몸이 세워져 가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는 인식에서 조금도 다르지 않습니다. 그들은 이 뜻의 성취를 위해 그들의 일생을 다 쏟아 부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첨부1: 그런데 이처럼 유기적인 구원을 통한 한 몸의 건축을 지향하는 것은 이미 수 많은 분열된 교파 조직과 계급적인 성직 제도로 굳어진 기성교회와 불가피하게 마찰을 가져왔습니다. 그리고 그 연장에서 기성교회로부터 오해와 반대를 받아 온 점에서도 두 성경교사는 같은 배를 탄 상황입니다. 또한 혹자는 워치만 니를 선호하고 위트니스 리를 비난하고 또 그 반대의 경우도 보게 됩니다. 그러나 두 사람이 공유하는 위와 같은 ‘교회론’은 지금까지 보았듯이 하나님의 마음의 갈망이고 지극히 성경적임에도 기성교회의 틀을 유지하고 싶어하는 거의 모든 분들은 이점에 대해서는 워치만 니도 비판하는 편입니다. 물론 그분들 중에는 성경의 빛 아래서 많은 갈등과 고민 끝에 결국 목사직을 내려놓고 성경적인 교회의 길을 택한 분들도 있습니다.
첨부2: http://www.ministrybooks.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