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 교회들에 대한 이인규님의 거짓말(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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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 교회들에 대한 이인규님의 거짓말(3)
지방교회의 정체, 이단적인 기독론(이인규님의 원글 제목)
(이인규님) “정통기독교는 예수 그리스도의 인성과 신성을 분리하지 않으며, 인성과 신성이 변화되지 않은 채 하나의 인격으로 연합되었다고 가르칩니다. 예수는 참 사람이었으며 참 하나님이셨습니다. 이것은 성경이 말하는 그대로의 내용을 요약한 것입니다. 예수의 인성과 신성 두 인격이 서로 충돌하거나 대립한 적이 없었으며, 예수님이 두 인격과 두 품성을 가졌다는 성경적인 내용은 단 하나도 찾아 볼 수도 없습니다. 또한 성경은 그분이 우리와 동일한 참 사람이었으며, 동시에 태초부터 선재하신 참 하나님이셨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교회사를 통하여 살펴 보면, 초대교회의 기독론에서 다음과 같은 이단적인 주장이 있었음을 알게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과 인성에 대한 주장 중에서 많은 이단적인 주장이 있었는데 간략하게 정리를 하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교회사를 살펴 보면, 항상 이러한 이단들의 주장이 먼저 나타났고, 이러한 이단들의 주장을 반박하기 위하여 정통신학이 정립되어진 것을 알 수 있습니다.
1) 예수는 인간적인 예수와 신적인 그리스도의 결합이라는 일부 그노시스파
2) 하나님 자신이 그리스도라는 한 형태로 나타나셨다는 사벨리우스파의 양태론
3) 그리스도의 일부는 피조물, 일부는 창조주라고 하는 반신으로 만든 아리우스파
4) 인간이 육체와 혼과 영의 세부분이고, 그리스도의 인성은 육체와 혼의 두 부분이고, 그리스도의 신성이 영으로 들어온다는 아폴로내리스파의 견해
5) 그리스도의 인성과 신성을 분리하여 양성을 주장한 네스토리우스파”
여기까지는 대체로 이인규님이 기독론 관련 내용을 잘 요약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동일한 주제가 지방 교회측이 펴낸 <진리의 변호와 확증>(한국복음서원, 1996) 제 4장 ‘그리스도의 인격에 관하여’(89-128쪽)에도 보다 상세하게 설명이 되어 있습니다. 문제는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이인규님은 ‘하나님이 육신을 입으셨다’라고 하면, 문맥 상 그 하나님은 삼위의 ‘제 2격’을 가리킴에도 ‘성부가 성자가 된 것’을 말하는 것이라고 오해하고 함부로 양태론이라고 정죄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이인규님이 지식으로는 위와 같이 말하나, 실제로는 ‘성부’만 ‘하나님’으로 믿기 때문입니다.
(이인규님) 우리는 이러한 이단적인 기독론에 대해 벌콥이 지적한 바와 같은 그노시스(영지주의)와 아폴로내리우스, 그리고 양태론을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러한 이단들의 기독론이 바로 지방교회의 기독론이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하여 지방교회는 삼위일체의 이단적인 양태론과 함께, 기독론에서 초대교회부터 존재해 왔던 그 이단적인 주장을 보이고 있는 것입니다.
한 마디로 근거없는 터무니없는 모함입니다.
(이인규님) “기독론에 의한 몇가지 중대 오류 - 인성의 실재성에 대한 부정 : 제 2세기의 그노시스파는 그리스도의 참된 인간성을 주장하였다. 어떤 사람은 그리스도를 단순히 순화한 육체, 혹은 천적인 육체로 보고, 또 어떤 사람은 "인간적인 예수와 신적인 그리스도를 구별"하여, "신적인 그리스도는 임시로 인간 예수와 결합하였다"고 보았다. 제 4세기의 싸벨리우스파는 "그리스도를 단순히 하나님께서 자신을 나타내신 한 형태"로 생각하였다.(루이스벌콥, 기독교신학개론, 197-198쪽)
이미 앞에서 지방교회의 양태론에 대해서 설명하였으며, 기독론에 대해서는 특히 아폴로내리우스에 대해서 주의깊게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신복윤 교수의 기독론에 대해서 살펴보겠습니다
- 그(아폴로내리우스)는 사람이 신, 혼, 영의 3부로 구성되었다는 헬라철학의 3분설의 개념을 가지고 로고스가 죄의 좌소인 영의 자리를 취하셨다고 주장하였다. 그리스도는 신체와 혼만을 가지셨고 영의 자리는 로고스가 채웠다고 하여 그리스도의 완전한 인성을 축소하였다. 즉 그리스도는 영이 없는 인성을 입으신 것이다.(신복윤 교수. 기독론에 나타난 이단, 102쪽)
아폴로내리우스는 예수를 “영”과 “혼+육”으로 분리한 것입니다, 즉 예수의 “영”은 “신성”으로 보았고, 예수의 “혼과 육”은 인성으로 보아서 부분적으로 분리를 시킨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이 말하는 신성, 예수의 영은 곧 성부 하나님 자신으로 본 것입니다.
즉 양태론적으로 볼 때에 성부하나님 자신이 육신을 입고 직접 오신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 자신이 예수의 영이 되고, 이것을 지방교회는 “그리스도”라고 부릅니다. 그래서 그들은 예수와 그리스도를 달리 구별합니다.
지방 교회측은 ‘성부 하나님이 직접 육신을 입고 오셨다’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거듭 밝히지만 이인규님은 성부만 하나님으로 인정하는 사상의 소유자임으로 ‘하나님’(성자)이 육신을 입으셨다’라는 문장을 ‘성부 하나님이 육신을 입으셨다’라는 문장으로 잘못 읽었을 뿐입니다. 유대인이나 여호와의 증인처럼 성부만 하나님으로 보는 본인의 이단성이 문제이지, ‘하나님(성자)이 육신을 입으셨다’는 말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습니다.
위트니스 리는 “성육신 안에서 그리스도는 육신을 입으셨다”(신약의 결론-그리스도, 523쪽), “하나님의 아들은 창세기 3장 15절에 약속된 것처럼 마리아에게서 태어나 여자의 씨가 되셨다”(회복역 갈 4:4 각주 2)라고 말합니다. 거듭 말하지만, ‘성부가 육신을 입으셨다’는 말은 어디에서도 한 적이 없습니다. 이 역시 터무니없는 모함일 뿐입니다.
(이인규님) “정통교회의 기독론은 인성과 신성을 분리시키지 않으며, 인성과 신성이 변화하지 않은 채 하나의 품성으로 연합하였다고 가르칩니다. 즉 지방교회는 인간 예수를 혼과 육으로 분리시켰고, 그리스도라고 부르는 성부 하나님을 영으로 분리시킨 것입니다. 그래서 지방교회는 “하나님 자신이 육신을 입고 오셨다”고 양태론적인 주장을 함과 동시에, 예수를 두 부분으로 분리시켜, 예수님의 영의 부분은 하나님의 아들이지만, 혼과 육의 부분은 하나님의 아들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것입니다.”
1) 지방 교회측 역시 기독론에서 인성과 신성을 분리시키지 않습니다. 다만 양성은 ‘구별’됩니다. 2) 이인규님의 “지방 교회는 인간 예수를 혼과 육으로 분리시켰고, 그리스도라고 부르는 성부 하나님을 영으로 분리시킨 것입니다.”라는 말은 전혀 근거없는 모함일 뿐입니다. 사실적인 근거가 없는 비판은 스스로의 가치를 떨어뜨릴 뿐입니다. 3) “하나님 자신이 육신을 입고 오셨다”는 말은 성부가 육신을 입었다는 말이 아닙니다. 성부만 하나님으로 인정하고, 삼위를 각각 분리시키는 이인규님의 삼신론적인 관점에서 봄으로 ‘하나님 자신’이 성부로 오해될 뿐입니다. 성자 하나님도 ‘하나님 자신’이십니다. 4) 주 예수 그리스도는 참 하나님, 참 사람이십니다. 이 둘을 구별하여 ‘사람’(인성) 부분은 ‘하나님’(신성)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그분의 양성을 믿는 사람이라면 지극히 당연한 말을 트집잡는 것은 이인규님은 주 예수님의 양성을 부정하기 때문이 아니면 무엇입니까? 예수님의 사람이신 부분까지 하나님이시라면 그분은 우리와 같은 참 사람은 아닌 것이 됨으로 그것은 양성을 부인하는 심각한 이단사상입니다.
(이인규님이 인용한 위트니스 리의 1차 자료들)
- 하나님의 성육신 안에서는 신성이 인성 안으로 들어왔고, 인성에 더해졌다. 이 「하나님-사람」의 부활 안에서는 인성이 신성 안으로 가져가졌고 신성에 더해졌다. 이것은 놀라운 왕복교통이다. 사람의 본성과 신성한 본성, 이 두 본성이 서로 더해졌을 뿐 아니라, 한 실체, 한 인격으로 제삼의 성분을 산출하지 않고 서로 연합되었다. (새 예루살렘, 237쪽)
예수님의 양성은 레위기 2장 4절의 소제(고운 가루와 기름)의 예에서 보듯이 ‘구별은 되나 분리되지 않게 연합’되며, 결코 ‘제삼의 성분’을 산출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위 언급은 매우 성경적입니다.
- 비록 그분의 "인간의 부분"이 죽었지만, 죽지 않는 "그분의 신성한 부분"은 영원히 산다. 그리스도는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실 수 있었다. 왜냐하면 그 분은 자신 안에 신성한 요소 곧 거룩의 영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경륜과 하나님-사람의 합당한 삶, 44-45쪽)
매우 성경적인 언급입니다. 이것은 양성을 ‘분리’시킨 말이 아니고, ‘구별’하여 말한 것입니다. 만일 이러한 구별도 무시한다면 그는 그리스도의 양성(신성, 인성)을 입으로는 믿는다고 하나 참되게 믿는 자는 아닙니다.
- 그 분이 육체 안에 사셨을 때에 "그분의 한 부분"은 다만 사람, 곧 다윗의 씨였다. 그 부분은 하나님의 아들이 아니었다. 그러면 "그 부분"이 어떻게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는가? 그것은 죽음과 부활을 거쳐 인정됨을 통해서이다. (같은 책, 45쪽)
- 그러므로 그분의 부활 이전에 그분은 그분의 신성 안에서 하나님의 아들이셨다. 그러나 그 분의 성육신으로 그분은 인성 안으로 들어가셨고 그 분의 존재의 부분으로 인간의 본성을 입으셨다. 그러나 그 분의 인성은 그분이 부활할 때까지는 「아들화」 되지 않은, 즉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되지 않았다. (위트니스 리, 그리스도, 23쪽)
역시 예수님의 인성은 ‘신성’이 아니다 라는 지극히 성경적인 언급입니다. 주 예수님의 부활시 즉 영광받으셨을 때(눅24:26), 그분의 인성은 ‘죽을 인성’에서 ‘죽지 않는 인성’이 되셨습니다 (계1:18). 위 내용은 이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요7:39, 고전15:45, 행13:33 본문은 이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지극히 성경적인 말입니다.
- (골1:15-18의 구절) 이 구절은 그리스도께서 창조자이실 뿐 아니라 모든 창조된 것들 가운데 첫 번째, 모든 피조물 가운데 첫 번째 이심을 계시한다. (그리스도, 67쪽)
그리스도는 참 하나님이자 참 사람이십니다. 따라서 그분은 참 하나님이신 방면에서는 창조자 이십니다. 그러나 참 사람이신 면에서는 참 사람인 우리가 피조물인 것처럼 그분의 인성도 피조물입니다. 이 역시 주 예수님의 양성을 믿는다면 아무 문제가 없는 말입니다. 만일 그가 참 사람이심에도 우리와 달리 피조물이 아니라고 누가 주장한다면, 그가 믿는 예수님의 인성은 참 사람의 인성이 아니게 됩니다. 이인규님은 지금 주 예수님의 참 사람이신 방면에 대해서 계속 문제를 제기하고 있는 것 자체가 그의 기독론 특히 그리스도의 인성이해에 심각한 하자가 있다는 반증인 것입니다.
(이인규님) “지방교회가 말하는 영은 구약과 신약(부활전)의 성령과 다릅니다. 양태론자인 베뢰아 김기동 목사는 구약의 하나님의 신이 천사였다고 주장하였는데, 양태론적인 견해로서 하나님이 예수님으로 예수가 부활의 영으로 과정을 거쳤다고 보기 때문에 양태론자들의 시각으로 구약의 하나님의 신, 여호와의 영은 오순절 이후의 성령과 다르다고 주장할 수밖에 없습니다.”
요한복음 7장 39절은 “예수께서 영광을 받지 못하신고로” “성령(그 영)이 안 계신다”(The Spirit was not yet)고 말합니다. 만일 주 예수님의 영광 받으심 곧 부활하심 전후의 영이 동일하다면, 위 말씀 자체가 심각한 오류가 있게 됩니다. 따라서 주 예수님의 부활을 기점으로 그 전과 후의 영이 다르다는 것은 ‘성경 자체’가 내포한 사상이지 위트니스 리가 ‘주장’한 것이 아닙니다. 이에 관해서는 https://www.localchurch.kr/3776 에 정리된 내용들을 참고할 수 있습니다. 참고로 이 문제는 양태론과는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이인규님) “즉 지방교회의 교인들에게 부활의 영이 내주하면, 그들은 곧 하나님이 되는 것입니다. “혼과 육”(인성)을 가진 지방교회 교인들에게 양태론적인 “그 영”(신성), 즉 하나님의 실재가 들어오면 그들은 예수와 동일한 구성을 갖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그리스도와 똑같이 됨으로서 그들은 이것을 부활이라고 부르기도 하고, 예수의 재림이라고 부릅니다. 우리 기독교가 말하는 부활과 재림이 아닙니다. 이제 위트니스 리의 주장은 이해가 갈 것입니다. 더 자세한 설명은 지방교회의 인간론을 이해하면 그들의 전모를 알게 될 것입니다.”
1) 사람이 주 예수님의 부활의 영을 영접하면 하나님의 자녀가 됩니다. 2) 그 영이 우리 안에 영접되면 하나님의 생명을 소유한 것이며(요일5:11), 그 신성한 생명 안에 있는 신성한 본성 또한 소유하게 됩니다. 이것은 성경의 가르침이며 거듭난 모든 믿는 이들이 갖는 특권입니다. 3) 지방 교회측 성도들이 “그들은 이것을 부활이라고 부르기도 하고, 예수의 재림이라고 부릅니다”라는 말은 근거없는 거짓말입니다. 이인규님은 이처럼 없는 말을 임의로 만들어 낸후 그것을 비판하는 소위 허수아비치기식 정죄를 자제해야 할 것입니다. 4) 위트니스 리의 말이 이해가 가기는 커녕 없는 말로 위트니스 리를 억지로 모함하고 있습니다.
(이인규님이 인용한 위트니스 리의 1차 자료)
- 그러나 그 분의 인성에는 죄가 없으며 결코 이전에 타락한 적이 없었기 때문에 그분의 인간의 부분은 구속될 필요가 없었으며 다만 높여질 필요가 있었다. 우리의 인성은 두 부분으로 되어있다. 한 부분은 하나님이 창조하신 부분이고, 다른 한 부분은 타락되고 부패한 부분이다....(하나님의 경륜과 하나님-사람의 합당한 삶. 48쪽)
“그 분의 인성에는 죄가 없으며 결코 이전에 타락한 적이 없었기 때문에 그분의 인간의 부분은 구속될 필요가 없었으며”와 같은 이런 성경적인 언급이 왜 문제가 되는가? 예수님의 인성도 구속이 필요함을 주장하기 위함인가 라는 질문을 해 두고자 합니다. 또한 “우리의 인성은 두 부분으로 되어있다. 한 부분은 하나님이 창조하신 부분이고, 다른 한 부분은 타락되고 부패한 부분이다.”라는 부분은 원문 확인이 필요하나, 해당 책자 48쪽에는 한국어와 영문 모두 전혀 다른 내용이 적혀 있습니다. 이 점은 이인규님이 해명해야 할 것입니다.
(이인규님) ”그래서 지방교회에서는 예수는 부분적으로 피조물이 되어지며, 그렇기에 사람이 하나님이 되는 것입니다. 지방교회에서는 예수님은 하나님(영) + 사람(혼 + 육)이 되어집니다.
터무니 없는 왜곡입니다. 예수는 부분적으로 피조물이 아니라 ‘사람’이신 부분이 ‘피조물’이십니다. 만일 이것을 부정하면 그는 양성부인 이단입니다.
(이인규님) 지방교회, 몰몬교 등은 사람이 하나님이 되어야 한다고 가르칩니다. 우리는 그것을 신인합일설이라고 부르는데, 특히 지방교회의 신인합일설은 사람과 하나님의 구별이 없는 "똑같이 되는 것"을 말합니다. 이것을 비판하면, 지방교회는 사람이 하나님과 똑같은 신격화를 한다는 의미가 아니며, 연합적인 개념이라고 변명을 합니다. 그러나 어느 누구도 지방교회가 교인들을 신격화한다고 비난한 적이 없는데도, 그들은 자신들이 신격화를 하지 않는다는 이상한 변명을 합니다. 우리가 비난하는 핵심은 지방교회의 주장, 즉 사람이 하나님이 될 수 있다는 그 주장입니다. 그들은 항상 이단적인 주장을 해놓고, 그것을 비난하면 그런 뜻이 아니라고 궁색한 변명을 합니다. 만일 그들이 정말로 그런 뜻이 아니라면 아래와 같은 글의 책을 쓸 필요가 없으며, 그러한 내용은 모두 버리고, 전면 수정하고, 사과를 해야만 하지 않겠습니까?”
“특히 지방교회의 신인합일설은 사람과 하나님의 구별이 없는 "똑같이 되는 것"을 말합니다.” 이런 이인규님의 언급이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쉽게 말해서 하나님과 사람은 ‘구별이 있다’(‘신격’이 있고 없고의 차이)는 것입니다. 이처럼 중대한 사실을 왜곡시켜 비판한 것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고 있는 것입니다. 지방 교회측은 몰몬교식이 아니라 정통 교부인 아타나시우스가 말한 개념으로서의 신화(神化)를 말하는 것입니다.
(이인규님이 인용한 위트니스 리의 1차 자료들)
- 우리는 그리스도와 하나님과 다 같은 부류이기 때문에 우리가 하나님과 하나될 수 있고 그리스도도 우리와 하나가 되실 수 있다. 우리는 그 분과 한 영이 되었다. 하나님이 당신을 창조하신 목적은 하나님을 당신 안에 담기 위한 것이다. (구약의 예표와 신약의 계시에서 본 하나님의 경륜, 45쪽)
1) 성경은 각기 종류대로 창조하되 특별히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대로 창조하셨다고 말합니다. 2) 우리가 주님을 생명으로 영접할 때, 그분은 보배로서 질그릇인 우리 안에 ‘담겨지신 것’입니다. 3) 이 때에 영이신 주님과 우리의 영은 연합되며 한 영’(one spirit)이 되었다고 성경은 말합니다(고전6:17).
- 그분은 우리와 같이 되셨다. 왜 그런가? 그 목적은 우리를 그 분과 똑같이 되게 하기 위한 것이다. 오늘 여러분은 하나님의 생명을 가졌고 하나님의 성품을 가졌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하나님과 똑같은 것이다. (구약의 예표와 신약의 계시에서 본 하나님의 경륜, 63쪽)
자녀들이 혈육을 입었음으로 주 예수님도 같은 모양으로 혈육을 입으셨습니다(히2:14). 우리는 거듭났을 때 하나님의 생명이신 그리스도를 영접하였고(요1:12, 골3:4), 이 생명 안에는 당연히 하나님의 성품이 담겨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 예수님이 소유하신 그 생명과 성품을 동일하게 소유하여 그분의 ‘많은 형제들’이 되었습니다(히2:11-12). 이것은 우리가 맏아들의 형상과 같게 되기 위함입니다(롬8:29). 성경은 장래에 “그가 나타나심이 되면 우리가 그와 같은 줄을 아는고로”라고 말씀합니다(요일3:2).
- 바로 그 때 그들은 안팎으로 - 생명과 본성과 기질과 몸의 형태에서 - 하나님의 맏아들과 똑같게 될 것이다. (하나님의 경륜과 하나님-사람의 합당한 삶, 14쪽)
많은 아들들인 우리가 장차 맏아들이신 그분의 형상과 같아지리라는 것은 창세 전에 이미 예정된 것입니다. 구원은 바로 이것을 이루는 것입니다(롬8:28-29). 그러나 경배받는 그분의 신격에는 참여하지 못합니다.
- 만일 하나님으로부터 태어난 하나님의 자녀들이 하나님이 아니라면 그들은 누구인가? 자녀들과 아버지는 같은 종류가 아닌가? 요한복음 3장 6절은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라고 말한다. 당신과 당신의 부모는 모두 같은 종류, 육신의 종류이다. 6절은 또 말하기를 '영으로 난 것은 영이니'라고 말한다. 이 두 영은 같은 종류이며 또한 같은 근원이다. 우리는 하나님으로부터 태어나 많은 하나님-사람들,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 또한 우리가 믿고 경배하며 따르는 우리의 주님, 또한 첫번째 하나님-사람이다. (위트니스 리, 하나님-사람의 생활, 40쪽)
하나님의 자녀는 아버지의 생명과 본성으로 태어난 사람들입니다. 성경은 맏아들이신 주 예수님과 우리를 가리켜, “거룩하게 하시는 자와 거룩하게 함을 입은 자들이 다 하나에게서 난지라. 그러므로 형제라 부르시기를 부끄러워 아니하시고”라고 말합니다(히2:11-12). 따라서 그분은 첫번째 하나님-사람이시고, 우리는 많은 ‘하나님-사람들’입니다. 즉 형제 사이입니다.
- 우리는 과정을 거친 삼일 하나님 안에 있다. 바로 그 분이 우리 모두로 하나님의 체현이신 그 분의 맏아들과 똑같게 되도록 우리 안에서 역사하여, 결국 우리 모두를 하나님의 체현이 되게 하실 것이다. (하나님의 경륜과 하나님-사람의 합당한 삶. 18쪽)
예수 그리스도는 “신격의 모든 충만이 육체로 거하시는 분”(골2:9)이십니다. 이 분이 죽고 부활하신 후 우리 안에 생명으로 들어오신 목적은 우리 즉 교회도 그분의 몸으로서 그분을 단체적으로 표현하기 위함입니다(엡1:23, 3:21).
- 이 삼일 하나님이 우리의 거듭난 후로 우리 안에서 계속 역사해 오셨고, 우리가 하나님의 맏아들과 똑같이 될 때까지 그 역사를 계속하실 것이다. 하나님의 택한 자들인 우리 모두는 거룩케 됨, 새롭게 됨, 변화, 형상을 본받음의 과정을 거쳐 우리의 온 존재의 영화롭게 됨 안으로 들어가야 한다. (하나님의 경륜과 하나님-사람의 합당한 삶, 18쪽)
매우 성경적인 언급입니다. 문제될 것이 없습니다.
(이인규님) “위트니스 리는 분명히 사람이 하나님과 똑같이 되어야만 한다고 주장하였습니다. 이들은 이것을 하나님-사람(God-Man)이라고 부르며, 예수는 그 God-man의 첫 샘플이었다는 것입니다. 혼과 육(인성)을 가진 지방교회 교인들이 신성(영)을 갖게 되면, 그들이 바로 God-man 이 되기 때문입니다, 즉 이단적인 양태론과 이단적인 기독론이 아니라면 그들과 같은 주장을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의 이단적인 인간론이 결합되면, 그들의 신인합일론이 완성이 되어질 것입니다.”
위트니스 리는 생명과 본성에서 맏아들이신 주 예수님과 동일한 형상을 갖게 된다고 하나, 경배 받는 ‘신격’(데오테스, 골2:9)은 맏아들이신 그분만 가지신다고 반복해서 말하고 있습니다. 모든 면에서 사람이 하나님과 똑같이 된다는 말이 아닙니다. 그리고 그 과정도 “하나님의 택한 자들인 우리 모두는 거룩케 됨, 새롭게 됨, 변화, 형상을 본받음의 과정을 거쳐 우리의 온 존재의 영화롭게 됨 안으로 들어간다”고 지극히 성경적으로 말하고 있습니다.
(이인규님) “그들은 그러나 정통교회에게 자신들의 교리가 이단이 아니라고 말하면서 재검토를 해달라고 부탁하고 있으며, 한기총 회장에게 서신을 보내며, 기자간담회를 열고 있습니다, 더욱이 몇몇 기독교 인사들은 지방교회 세미나에서 축사를 해주고, 그들의 책을 광고를 해주며, 그들이 이단이 아니라고 선전해주고 있습니다.”
이미 미국에서 ‘크리스찬 리서치 인스티튜트’(CRI), ’행동하는 답변들’(AIA), 풀러 신학교 측이 수년에 걸쳐 철저한 조사연구 후 지방 교회측은 이단이 아니고 정통교회라고 결론을 내렸습니다. 통합측에게 재심을 신청한 것은 정통 그리스도인 사이의 소통의 차원이며, 기자 간담회 역시 같은 맥락입니다. 한기총 회장에게 서신을 보낸 것은 지방 교회측이 아니라 CRI 대표인 행크 해네그래프입니다. 정밀 검증 후 이단이 아니므로 이단이 아니라고 한 것은 선전이라기 보다는 진실을 밝힌 것입니다.
(이인규님) “우리는 지방교회가 자주 사용하는 용어에 대해서 알아야 합니다 아래가 그들이 사용하는 용어입니다. 그 용어는 양태론적인 이해와 이단적인 아폴로내리우스적인 기독론, 그리고 영혼육을 장소적인 개념으로 분리시키는 인간론을 파악한다면 어떤 뜻인지 저절로 알게 됩니다.
그리스도의 실재/참 생명, 예수와 그리스도는 다르다, 하나님의 생명과 본성, 하나님의 경륜, 하나님의 건축, 공급과 분배, 하나님의 표현/하나님의 체현, God-man(하나님-사람), 삼일 하나님, 하나님의 과정/단계, 사람은 성육신을 하여야 한다, 하나님을 누려야 한다, 그리스도를 누려야 한다.”
위 용어들과 “양태론적인 이해와 이단적인 아폴로내리우스적인 기독론, 그리고 영혼육을 장소적인 개념으로 분리시키는 인간론”은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참고로 ‘예수’는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마1:21)는 말씀처럼 ‘낳으신 아들’ 즉 인성 방면을 강조한 표현이라면, ‘그리스도’는 ‘기름부음 받은 자’ 즉 그분의 ‘사명’을 강조한 것일 뿐 ‘예수’가 따로 계시고, 그리스도가 따로 계신 것이 아닙니다.
결론적으로, 다른 단체나 개인의 신앙관을 검증할 때 요구되는 가장 기본적인 자세는 1) 사실을 사실대로 이해하고 2)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판단기준으로 평가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인규님은 이 두가지 모두에서 실패함으로써 이웃에 대하여 거짓 증거하는 죄를 반복해서 범하고 있습니다(출20: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