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태론 비판에 대한 지방교회 측의 반박(2) - ‘성자’도 ‘하나님 자신’임을 부인하는 이인규 씨의 이단 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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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태론 비판에 대한 지방교회 측의 반박(2)
- ‘성자’도 ‘하나님 자신’임을 부인하는 이인규 씨의 이단 사상
사람의 생명과 인권을 다루는 의사나 판사는 고도의 전문성과 자격을 갖춰야 활동할 수 있다. 그런데 영적으로 생사를 좌우하는 이단감별 분야에는 그런 공인 과정이 없다. 그러다 보니 이인규 씨 같은 무자격 이단 감별사들이 함부로 남을 이단 삼단 해도 막는 사람이 없었다. 그 결과 성경에 근거한 삼위일체론을 말해도 그에 의해 양태론으로 정죄 되는 사례가 발견되고 있다.
지방교회 측은 이런 폐단을 바로잡기 위하여 삼위일체와 관련된 이인규 씨의 이단 판단 기준의 문제점들을 몇 차례에 걸쳐 다루려고 한다.
먼저 이인규 씨는 ‘성부만’ 하나님 혹은 하나님 자신이시라고 이단적으로 믿는다. 따라서 누가 성자 하나님을 ‘하나님’ 혹은 ‘하나님 자신’이라고 말하면 즉각 양태론이라고 공격한다. 그러나 정통 삼위일체론은 성부께서 하나님 자신이실 뿐 아니라, 성자와 성령 또한 하나님 자신이시며, 그 셋은 본성과 지위에 전혀 차이가 없음을 말한다. 따라서 누구든지 이것을 부인한다면 그는 ‘다신론’ 혹은 ‘종속론’ 이단이 된다. 이에 대한 대표적인 예가 여호와의 증인들이다. 아래에서 보겠지만, 원칙적으로 이인규 씨 역시 여호와의 증인들과 같은 주장을 하고 있다.
1. 성자는 ‘하나님’ 또는 ‘하나님 자신’이 아니시며, 그렇게 말하면 양태론 이라는 이인규 씨
이인규 씨는 장로교 고신교단 ‘코람데오닷컴’ 토론방에 <지방교회의 양태론을 비판하면서>라는 긴 글을 올렸다. 명분상으로는 어떤 성도가 올린 글(https://www.localchurch.kr/7520)에 대한 반론이다. 그런데 이인규 씨는 그 글에서 위트니스 리가 ‘하나님이 육신이 되신 것’ 혹은 ‘아들이 하나님 자신’이심을 말한 부분을 아래와 같이 소개하며 양태론 이단이라고 했다.
“(이인규 씨) 지방교회의 주장은 양태론이다. 아니 적어도 위트니스 리의 주장은 양태론이 분명하다. 어느 누가 보아도 양태론이 아니라고 말할 수가 없다. 하나님 자신이 직접 마리아의 태 속에 들어가, 인간의 육신을 입고 예수로 이 땅에 와서, 하나님 자신이 직접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여 살려주는 영이 되었다고 하는 것이 지방교회의 주장이며, 어느 누가 보아도 이것은 전형적인 양태론이 분명하다. 지방교회는 위트니스 리와 다르다고 말할 자신이 있는가? 지방교회가 위트니스 리와 다르다고 답변할 수 없다면, 지방교회는 기독교의 삼위일체가 아니라고 솔직히 말해야만 한다.”
# 하나님으로서 그분은 처녀의 태 속에 들어가서 그 속에서 아홉 달 동안을 머무셨다. 이렇게 해서 그분은 인성을 그분의 피난처와 거처로 취하셨다. 분명히 그분의 성육신은 그분의 과정이었다. 두 번째로 그분은 삼십삼 년 반이라는 인생의 긴 터널을 통과하면서 이 땅에서 생활하셨다. 이것 또한 하나의 과정이었다. 세 번째로 그분은 죽음 안에 들어가서 무덤과 음부를 포함한 죽음을 통과하셨다. 네 번째로 그분은 삼 일 후에 사망과 음부를 걸어 나오셔서 부활 안으로 들어가셨다. 그분의 죽음과 부활 또한 하나의 과정이었다(위트니스 리, 세 부분인 사람의 생명 되시는 삼일 하나님, 52-53쪽).
# 그러므로 요한복음 3장 16절은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다고 말한다. 하나님은 자기의 아들을 주셨다. 이 아들이 하나님과 분리되어 있다고 여기지 말라. 우리에게 주신 바 된 이 아들이 바로 다름 아닌 그 "하나님 자신"이다. 당신이 아들을 영접할 때 그것은 바로 하나님을 영접하는 것이며(위트니스 리, 하나님의 경륜 안에 있는 두 가지 큰 비밀, 18-19쪽).
위 이인규 씨의 비판 속에는 성자 하나님은 ‘하나님’ 혹은 ‘하나님 자신’이 아니라는 사상이 내포되어 있다. 즉 그의 생각에 오직 성부만 하나님 혹은 하나님 자신이실 뿐이다. 그러나 이것은 아래에서 보듯이 성경의 가르침도 아니고, 정통 신학자들과도 다른 이단 사상일 뿐이다. 뒤에서 다루겠지만 위트니스 리는 성자가 육신을 입으신 것을 말한다. 그러나 그 성자 역시 하나님 자신이시라는 것이다. 이것은 이인규 씨의 왜곡처럼 ‘성부’가 성육신 후에 ‘성자’가 되셨다는 말이 결코 아니다.
2. 성육신하신 주체는 하나님의 아들이시지만, 그분은 하나님 자신이시다.
다시 말하지만, ‘성부’만 하나님(하나님 자신)이시고 ‘성자’는 그렇지 않다는 이인규 씨의 주장은 이단 사상이다. 아래에서 보는 것처럼 성경과 정통 신학자들은 그런 사상을 배척한다.
1) 성경 본문
도마가 예수님께 “나의 주님, 나의 하나님!”이라고 대답하자… 그대는 나를 보았기 때문에 믿습니까(요20:28-29)?
유대인들은 더욱 예수님을 죽이려고 하였는데, 왜냐하면 … 그분 자신을 하나님과 동등한 위치에 두셨기 때문이다(요5:18).
유대인들이 예수님께 대답하였다. … 그대는 사람이면서 하나님으로 자처하고 있습니다(요10:33).
그리스도는 만물 위에 계셔서 영원히 찬양을 받으실 하나님이십니다(롬9:5).
우리는 그 참되신 분, 곧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습니다. 이분은 참되신 하나님이시며, 영원한 생명이십니다(요일5:20).
말씀은 곧 하나님이셨다(요1:1).
이처럼 성경은 성부만 아니라 주 예수님께서도 하나님 자신이심을 반복해서 증언하고 있다. 오직 눈먼 유대인들과 이단인 여호와의 증인들만이 이것을 부인할 뿐이다. 이인규 씨 역시 같은 부류에 속한다.
2) 정통 신학자들(칼빈, 웨인 그루뎀, 아타나시우스 신조)
칼빈 신학교에서 조직신학을 가르치는 김석환 박사는 자신의 소논문인 “캅바도키아 교부들과 칼빈의 삼위일체론” 23쪽에서, 다음과 같이 칼빈의 견해를 소개하고 있다.
“B. 하나님 자신: 기독교 강요 제 13장 6항에서 칼빈은 요한복음 1:1 절의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라는 말씀을 인용함으로써 ‘말씀이 곧 하나님 자신’이라고 말한다. 즉 칼빈은 “그는 말씀이 곧 하나님 자신이라고 덧붙인 후에 곧이어서 우리에게 본질의 한 단일성을 상기시켜준다”라고 말한다. 여기서 칼빈이 말한 그란 사도 요한을 가리킨다. … 칼빈은 여기서 ‘그리스도의 신성’에 대한 확립 차원에서 말씀을 가리켜 ‘하나님 자신’이라고 한 것이다 (23쪽).”
위 논문은 이어서 아버지만이 ‘자존 하시는 하나님’이시라는 사상(이인규 씨가 가지고 있는)은 오리겐이 주장한 것이고, 이것은 훗날 여호와의 증인의 원조 격인 아리우스의 종속론으로 발전했다고 말한다. 물론 종속론은 이단 사상이다.
오리겐에 의하면, 아버지만이 ‘자존 하신 하나님’(αύτόθεος)이시고, 아들은 그냥 ‘하나님’(θεός)이시며, ‘그 하나님’(ὁ θεός)이 아니시다. 아들은 ‘제2차적인 신’(δευτερος θεος), ‘파생적인 신’으로서 2차적인 영광을 받으신다. 이 사상에 따라 아리우스의 종속론이 발전하게 되었다(위의 논문, 77번 각주).
참고로 칼빈이 성부만이 아니라 성자와 성령도 마찬가지로 ‘자존 하시는 하나님’(αύτόθεος)으로 믿었다는 사실은 제럴드 브레이도 다음과 같이 확인해 주고 있다.
그러나 한 가지 예외는 칼빈은 성부만이 아니라 성자와 성령도 이 본질을 충만하게 보여주시며 그러므로 성자와 성령 역시 ‘아우토테오스’로 즉 그 자체로 완전한 신으로 간주하여야 한다고 주장했다는 점이다(제럴드 브레이, 신론, 262쪽).
이인규 씨는 ‘삼위의 각 위격들이 각각 분리되신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그런 주장을 기준으로 위트니스 리와 지방교회 측을 양태론이라고 정죄한다. 그러나 위 김석환 박사의 소논문은 결론 부분에서, 그런 주장은 칼빈과 다르며 따라서 정통 삼위일체론이 아님을 말해주고 있다(이 점은 별도 글로 다룰 것임).
“III. 결론: 칼빈의 진술들로부터 우리는 위격과 실체의 관계에 관한 소명제들을 다음과 같이 뽑아 볼 수 있었다: 첫째, 각 위격들은 본질의 분리된 부분을 각각 소유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둘째, 각 위격은 세 별개의 개체들이 아니다. 셋째, 본질과 위격은 분리되지 않는다. 각 위격들도 서로 분리되지 않는다”(34쪽).
칼빈만이 성자께서 하나님 자신이심을 말한 것이 아니다. 이인규 씨도 자주 인용하는 정통 신학자인 웨인 그루뎀도 아래와 같이 “성자 하나님이 하나님 그 자체”이시라고 말한다.
“첫째, 각 위는 온전한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을 상기함이 중요하다. 즉, 각 위는 완전한 하나님의 존재라는 사실이다. 성자는 부분적으로 하나님인 것도 아니고 하나님의 삼분의 일도 아니라 온전하고 전체적인 하나님이시며, 성부도 그러하고 성령도 그러하다. … 성부는 하나님의 전체이시며 성자도 하나님 그 자체이시고 성령도 온전하신 하나님이라고 말해야 한다. … 성부는 하나님의 모든 것이며, 성자도 하나님의 모든 것이고, 또한 성령도 하나님의 모든 것이 되신다”(웨인 그루뎀, 조직신학 상, 362쪽).
사실 이인규 씨와 달리, 모든 정통 신학자들은 성부, 성자, 성령께서 동등한 하나님이심을 믿는다. 이 점은 아래 아타나시우스 신조(http://kcm.kr/dic_view.php?nid=38360)도 확인해 주고 있다.
이와 같이, 성부도 신이고, 성자도 신이고, 성령도 신이다. 그러나 신은 셋이 아니라 하나만 존재한다. 이와 같이, 성부도 주님이고, 성자도 주님이고, 성령도 주님이다. 그러나 주님은 셋이 아니라 하나만 존재한다. … 이 삼위일체에서 선후나 대소가 없다. 세 분 모두 다른 분과 같이 영원하고 동등하다. 따라서, 상술한 대로, 일체가 삼위로, 삼위가 일체로 예배 되어야 한다.
3. 위트니스 리와 지방교회 측이 말하는 성육신의 주체는 전적으로 성경적이다.
놀랍게도 이인규 씨의 억지 주장처럼 위트니스 리가 ‘성부’께서 육신을 입으셨다고 말한 곳은 단 한 곳도 없다. 대신에 위트니스 리는 아래에서처럼 “하나님의 아들(2격)”이 육신을 입으셨다고 말한다. 다만 그 하나님의 아들도 ‘하나님’이시고 또한 ‘하나님 자신’이시라는 것이다.
“때가 찼을 때 삼일 하나님은 신성한 삼일성의 두 번째 위격이신 하나님의 아들을 사람의 몸을 취한(히 10:5) 성육신으로 보내셨다”(위트니스 리, 그리스도, 한국복음서원, 193쪽).
또 한 가지 주목할 사실은 성육신 하신 하나님의 아들은 이인규 씨의 오해처럼 성부와 성령으로부터 ‘분리’된 1/3 하나님만이 아니시라는 점이다. 그분은 “신격(성부, 성자, 성령)의 모든 충만이 육체로 거하시는 분”이시다(골2:9). 따라서 성자가 오실 때 구별은 되나 분리가 안 되시는 다른 두 위격도 함께 오신 것이다. 이런 이유로 성경은 성자께서 이 땅에 계실 때 여전히 성부와 서로 안에 함께 계셨다고 하고, “아들을 부인하는 자는 아버지도 없게 된다”고 한 것이다.
-“거룩한 삼위일체의 위격들은 분리할 수 있는 개체들이 아니다. 각각은 나머지 둘을 포함하며, 각각의 오심은 나머지 둘의 오심이다”(아우구스트스 스트롱, 조직신학 (Philadelphia: The Judson Press, 1912), p. 333).
-“나는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는 내 안에 계신 것을 네가 믿지 아니하느냐 내가 너희에게 하는 말이 스스로 하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셔 그의 일을 하는 것이라”(요14:10).
-“본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아버지 품속에 있는 독생하신 하나님이 나타내셨느니라(요1:18)(헬라어 원문은 아버지 품속에 현재도 ‘있는’, 즉 현재시제임).
-“하늘에서 내려온 자 곧 하늘에 있는 인자 외에는 하늘에 올라간 자가 없느니라”(요3:13, 킹제임스 번역 참조).
-“만일 내가 판단하여도 내 판단이 참되니 이는 내가 혼자 있는 것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가 나와 함께 계심이라"(요8:16, 29).
-“아들을 부인하는 자에게는 아버지가 없으되 아들을 시인하는 자에게는 아버지도 있느니라”(요일2:23).
이단 감별사인 이인규 씨는 성자께서 ‘참 하나님’이심을 부인하고, 삼위의 ‘분리’를 믿는 이단이다. 이런 그의 이단적인 잣대가 지방교회 측의 정통 삼위일체론를 양태론처럼 보이게 만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