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교회 양태론 시비의 실상(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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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교회 양태론 시비의 실상(5)
지방교회 측이 양태론을 믿는다고 비판한 사람들 중에 최삼경 목사, 이인규 권사, 김홍기 목사가 있습니다. 지방교회 측은 그동안 우리가 믿는 삼위일체론은 성경적이며, 오히려 비판자들의 삼위일체관에 심각한 문제가 있음을 여러 차례의 토론을 통해 한국교계 앞에 폭로해 왔습니다. 그러한 노력의 직간접적인 결과로, 최삼경 목사는 한기총과 본인이 소속된 장로교 통합교단에 의해, 이인규 권사는 장로교 합동 교단에 의해 각각 삼위일체론에서의 이단으로 공식 규정되었습니다(그런데도 문제가 많은 이 분들의 주장 내용은 문서 혹은 유튜브 형태로 지금도 인터넷 상에서 확산되고 있음).
최삼경 목사 이단 규정 기사: https://www.localchurch.kr/defense/29851
이인규 권사 이단 규정 기사: http://www.newspower.co.kr/sub_read.html?uid=43974
김홍기 목사 삼신론 이단 사상: https://www.youtube.com/watch?v=AVC34QhFLyY
과거에 스스로 한국 교계를 대변한다며 여러 단체와 개인에게 이단 시비를 걸어 이단으로 정죄되게 한 것에 비춰볼 때, 오히려 그러한 장본인들이 공교단에 의해 삼위일체론에서의 이단으로 규정된 것은 참으로 충격적인 일입니다. 그러나 비진리를 기준으로 남을 정죄한 것에 대한 사필귀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한국교계는 주로 이들의 주장을 근거로 억울하게 양태론자로 정죄된 선의의 피해자들(지방교회 측 포함)에 대해 조만간 어떤 형태로든지 재평가 작업을 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삼위일체론에 관해 위 세 사람이 모두 오해했던 진리 항목들에 대해, 김홍기 목사와 토론 내용을 중심으로 그 실상을 몇 차례에 걸쳐 소개할 것입니다.
이 글은 그중 다섯 번째로서 지방교회 측과 김홍기 목사와의 교회와 신앙 인터넷 지면을 통한 공개 토론에 대한 결론의 말입니다. 우리는 이 다섯 차례에 걸친 이러한 지방교회 측의 반론 내용이 한국교계 내에서 성경적인 바른 삼위일체론을 정립하는데 작으나마 기여할 수 있게 되기를 소망합니다. 아멘.
삼위일체론은 누가 다뤄도 어렵고, 피조물인 인간의 한계를 절실히 느끼게 하는 진리이다. 그 결과, 모두 정통 신학자임에도 캅바도키아 교부들은 ‘삼위’(三位)의 방면을 강조하다가 ‘삼신론’시비에 연루되었고, 어거스틴은 ‘하나’의 방면을 강조하다 ‘양태론’이라는 오해를 받기도 했다. 따라서 삼위일체 토론에서는 어느 특정 표현만으로 성급히 정죄하기보다는, 전반적인 틀에서 성경적인 삼위일체의 요건들(삼위, 동일 본질, 삼위께서 구별되나 분리 불가하심 등)을 믿고 있는지를 살펴보는 합당한 인식이 필요하다고 본다.
지금까지 지방 교회측과 김홍기 목사는 삼위일체에 관해 주로 다음 세 방면에서 치열하게 토론해 왔다.
첫째, 성육신의 주체는 당연히 ‘제 2격’ 아들 하나님이시다(갈4:4). 그런데 이 분은 또한 구별되나 분리 불가하신 성부와 성령도 포함되신 ‘온전한 하나님’(fully God), 즉 ‘삼위 전체’이시기도 한 것인지(골2:9, 딤전3:16)(지방 교회측), 아니면 성부와 성령은 제외되신 ‘제2격만’(1/3 하나님)이신지(김홍기 목사)에 관한 대립이었다. 사실 이 점이 가장 근본적인 쌍방의 입장 차이이다. 그런데 웨인 그루뎀의 바른 지적처럼, “많은 복음주의자들”이 후자라고 오해함으로써 (잠재적으로) 삼신론적인 경향을 갖는다.
둘째, ‘구별’되신 세 위격들이 ‘분리’되지 않고 하나를 유지하시는 방법이 ‘동일 본성’의 공유만인지(김홍기 목사), 아니면 ‘세 위격들 간의 상호 내주’(페리코레시스)(요14:10-11)가 더 필요한 것인지(지방 교회측)에 관한 대립이었다. 참고로 김 목사는 자신도 상호 내주를 믿지만, 지방 교회들처럼 위격들 간의 내주가 아닌 신성한 동일 본성 간의 내주라고 주장한다. 따라서 이 문제는 ‘위격들’ 간의 상호 내주와 ‘본성’ 간의 상호 내주와의 다툼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김 목사의 주장은 ‘상호’(mutual)(내주)라는 단어의 뜻을 고려해 볼 때, 최소한 신성한 본성이 둘 이상이라야만 성립된다. 그러나 이것은 바른 삼위일체론이 아니다.
셋째, 또한 성경 본문 자체가 ‘성자가 성부이시고’(사9:6), ‘성자가 성령이시다’(고후3:17)라고 위격을 동일시 할 때, 그것을 경륜적인 삼위일체 방면에서의 ‘기능적인 동일시’로 볼 것인지(지방 교회측), 아니면 세 위격 간의 ‘동일 본성에 따른 동일시’로 볼 것인지(김홍기 목사)에 관한 대립이었다. 그런데 ‘동일 본성을 공유하니 성자는 성부’라는 식의 김 목사의 주장은 ‘본성과 위격의 혼동’이라는 또 다른 심각한 문제를 만들어 낸다.
결론적으로, 웨인 그루뎀의 진단에 의하면, “오늘날의 많은 복음주의자들”은 “나누어지지 않는 한 분(혹은 ‘나누어지지 않는 한 본성’-김홍기목사 견해)으로서의 하나님의 통일성”을 거의 의식하지 못하여 무의식 중에 “삼신론적인 견해를 지향하는 경향”이 있다(조직신학(한글 번역판), 356쪽). 또한 유해무 교수의 추천사 내용에 따르면, 위 백충현 박사는 자신의 책에서 “오늘날 부흥기를 맞은 삼위일체론이 여전히 해결해야 할 존재론적, 인식론적 과제는 “신비”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전면에 와야 해결될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우리는 위 두 가지 진단에 공감한다. 또한 삼신론적인 견해를 갖게 되고, 인식론에서 주 예수 그리스도의 위격이 소홀히 여겨지게 된 근본 원인이 김홍기 목사처럼 세 위격들을 각각 분리시켜 생각하는 신학 이론에 있다고 본다. 왜냐하면 그들의 논리에 따르면 우리 안에는 오직 제 3격만 내주가 가능하고 1격과 2격의 하나님은 저 하늘에 남아 계셔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것은 하나님의 한분으로서의 통일성이 동일 본성의 공유 외에, 한 신격(골2:9), 삼위의 상호 내주(요14:10-11)에 따라 구별은 되나 분리는 불가능한 특성에서도 기인한다는 점을 무시한 데서 온 매우 애석한 결과일 뿐 성경적인 삼위일체관이라고 하기 어렵다.
그 결과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주 예수 그리스도)을 믿는 자”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요1:12), “하나님의 아들이 있는 자는 생명이 있다”(요일5:11)고 성경은 말하나, 하나님의 아들의 위격은 저 하늘에 머물 뿐임으로 거듭남의 진리가 모호하게 된다(요3:6). 또한 내주하시는 그리스도(골1:27)께서 우리의 자기 부인을 통해(갈2:20, 마16:24) 사람의 거듭난 영(고전6:17)에서 마음에까지 거처를 확대하시는 것(엡3:17)이 성화 과정임에도 첫단추가 제대로 꿰어지지 않다 보니 이 부분 역시 주관적인 생명의 체험이 결여된 채 단지 교리와 지식 차원에서 거론될 수밖에 없다. 그 결과는 “그리스도 안의 어린 아기들”(고전3:1)만 양산되는 것이다.
또한 교회는 생명되신 그리스도 자신의 충만(골3:4, 엡1:23)이지만 충만되셔야 할 그리스도의 위격은 저 하늘에만 머물고 계심으로, 머리이신 주님께서 “나”(행9:4-5)라고 동일시 하신 이 땅에 존재하는 한 새사람의 몸인 교회는 실재가 아니라 단지 “비유”일 뿐이라고 오해할 수밖에 없다. 이 모든 것이 현재 김홍기 목사가 주장하는 잘못된 삼위일체론의 심각한 후유증이라는 것이 우리의 판단이다.
우리는 이번 토론을 통해, 우리를 ‘구속주’(벧전2:24)와 ‘생명’(요11:25)과 ‘남편’(고후11:2)이 되시려고 이 땅에 육신을 입고 오시고, 인생과, 죽음과, 부활을 거쳐 생명주는 영이 되시어 우리 안에 오신 그리스도는 제 2격 하나님이실 뿐 아니라 삼위 전체, 즉 온전한 하나님(fully God)이시다(사54:5)라는 인식이 한국 교계 안에 새롭게 인식되었기를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