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 중심의 신앙과 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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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칫 논쟁이 될까하여 여러번을 고려하다 기도가운데 이 글을 쓰고 있습니다.
삼위 하나님은 성경에서 두 방면으로 묘사되곤 합니다. 본체론적인 삼위일체 방면과 경륜적인 삼위일체 방면이 그것입니다. 두 방면 모두 성경말씀이고, 우리의 믿음의 대상임은 물론입니다.
1.
저 하늘에 계신 성부 하나님이 어느날 성자를 이 땅에 보내셨습니다. 그분은 하나님이시되 죄만 없으시지 우리와 똑같은 육신을 입으셨습니다. 그분은 이 땅에서 인생을 사셨고, 죄인인 우리를 위한 대속의 죽음을 죽으셨습니다. 그후 삼일 만에 육신을 입고 부활하셨습니다. 그후 승천하사 하늘 보좌 우편에서 우리를 위하여 중보자로 계십니다. 그리고 그분은 장차 때가 되면 이 땅에 심판자와 왕으로 재림하실 것입니다. 한편 성부와 성자는 보혜사 성령을 이 땅에 보내사 성령을 받은 사람들이 생겨나게 하셨고, 성령님은 그 사람 안에 내주하시며 삶을 주관하십니다.
여기까지는 정통 그리스도인들이라면 누구나 신앙으로 고백합니다. 저 또한 깊은 속에서 아멘하며, 이 내용들을 저의 신앙으로 고백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만일 여기서 그친다면 성부와 성자는 우리와 멀리 떨어진 존재이실 뿐이라는 것입니다. 자, 이 다음 부터가 제가 강조하고픈 대목입니다.
2.
그리스도의 사도요 모든 믿는 이들의 본(딤전1:16)인 사도 바울은 유명한 복음 전파자였습니다. 물론 그는 위 내용을 복음에 포함시켰지만(고전15:2-4) 거기서 그치지 않고 요즘 한국 교계복음 전파에서는 잘 찾아보기 어려운 더 전진된 복음의 내용을 포함시켰습니다. 아래와 같습니다.
"내가 교회의 일군 된 것은 하나님이 너희를 위하여 내게 주신 경륜을 따라 하나님의 말씀을 이루려 함이라. 이 비밀은 만세와 만대로부터 옴으로 감취었던 것인데 이제는 그 성도들에게 나타났고 하나님이 그들로 하여금 이 비밀의 영광이 이방인 가운데 어떻게 풍성한 것을 알게 하려하심이라. 이 비밀은 너희 안에 계신 그리스도시니 곧 영광의 소망이니라. 우리가 그를 전파하여...각 사람을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한 자로 세우려함이라."(골1:25-28).
위 내용이 왜 전진된 복음일까요? 보통의 복음 내용은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죄를 사하심을 전하고 예수님 영접하라고 권하여 영접 기도하면 그 후에는 양육 단계로 들어갑니다. 그런데 기묘한 것은 예수 믿고 영접하라고 해서 했는데, 그 사람 안에는 예수님은 안 계시고, 성령님만 계신다고 또는 성령님이 예수님을 대리하여 우리 안에 계시니 결국 예수님이 계신 것이라고 설명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위에서 보듯이 사도 바울은 그렇게 말하지 않았습니다. 당당하게 "이 비밀은 너희 안에 계신 그리스도(성령이 아니라..)시니 곧 영광의 소망"이라고 선포하고 바로 그 그리스도(내주하시는, 또는 내주하시기를 원하고 계시는) 를 복음으로 전하고 그 그리스도 안에서 각 사람이 완전한 자로 세워지는 것을 위하여 그야말로 해산하는 수고를 마다 않고 있습니다(갈4:19). 그럴뿐 아니라 자신이 예수와 함께 죽었고 이제는 자기가 아니라 자기 안에 그리스도께서(성령이 아닌) 사신다고 말합니다(갈2:20). 심지어 그는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빌1:21)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주옥같은 말씀들은 성부와 성자를 저 멀리 하늘에 계시게 하고 성령만 우리 안에 내주하심을 강조하는 분들에게는 잘 설명도 되지 않고 이런 체험도 그 다지 많지 않는 그야말로 그냥 성경에 있는 이야기에 불과할 수 있습니다. 오직 성령님의 인도, 성령 충만이라는 용어만이 가까이 느껴질 뿐입니다. 그러면서도 정작 성령의 인도를 받아 살거나 성령 충만하여 참으로 본이 되는 그리스도인들은 찾아보기가 어려운 것이 현실입니다. 왜 이런 일이 생겼을까요?
3.
바로 삼위일체론에 문제가 있기 때문으로 보입니다. 즉 성경이 계시하는 삼위는 본체론적으로 구별은 되나 분리되지는 않으시는 상호 내주하시는 하나님이심에도 불구하고, 한국 교계에서 지금까지 가르쳐지고 강조되어 온 하나님은 성부, 성자, 성령을 엄격하게 구별함에서 지나쳐 각각 떨어진 세 사람처럼 분리시켜 생각하는 삼위일체론이기 때문입니다. 즉 성부가 성자를 이 땅에 보냈으면 성부는 저 하늘에 남아 계시고 성자 안에는 안 계시고, 성부, 성자가 성령을 우리 안에 보내셨으면 우리 안에는 성령만 계시고 성부, 성자는 안 계신다는 식입니다. 이것은 경륜적인 삼위일체 방면 만을 따른 이해입니다. 따라서 삼신론적인 냄새가 짙고, 이런 논리가 먹혀들지 않는 성경 본문들이 수두룩하게 생겨납니다.
당장 위에서 소개드린 바울이 전한 복음의 내용과 모순됩니다. 우리 안에 계신 그리스도가 성령이라고 설명하면 양태론 덫에 걸려드니 그렇게 말할 수도 없습니다. 결국 답변이 궁색해 지게 되어 있습니다. 이것뿐이 아닙니다. 고전 8:6을 보겠습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한 하나님이 계시니 곧 아버지가 계시니" 한국 교계 다수의 삼위일체론으로 이 말씀을 푼다면 성자, 성령은 하나님도 아니게 생겼습니다. 여호와의 증인들 논리를 지지하는 말씀으로 악용될 여지도 다분합니다. 그러나 힐라리우스를 포함한 정통 교부들은 성부라 할때 성자와 성령을 배제시키지 않는다고 이해합니다. 요8:16, 29를 보면 성자를 이 땅에 보내신 성부가 성자와 함께 계신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심지어 요14:10-11는 성자가 성부 안에 성부는 성자 안에 계신다고 하심으로 제자들이 이해 못할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러나 삼위가 구별은 되시나 분리는 안되시는 본체론적 속성을 파악하고 있는 사람은 이 말씀이 쉽게 이해됩니다.
그렇다면 , 이제 우리 안에 내주하시는 성령은 어떨까요? 1, 2격이 배제 된 3격 성령님만이라고 흔히들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런 이해는 매우 위험한 진리 인식임음 알아야 합니다. 심하게 말하면 삼신론 이단 사상입니다. 그 대신에 3격 성령님이시되, 그 안에 구별되나 분리 안 되게 상호내주 (페리코레시스) 하시는 성자와 성부가 함께 계신다고 즉 온전한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 계신다 라고 말하는 것이 성경과 정통신학에 부합한 답변입니다. 만일 어거스틴의 삼위일체를 정통신학으로 인정한다면 말입니다. 참고로 김석환 교수님의 '삼위일체에서 페리코레시스 이론에 관한 분석'같은 논문은 삼위가 본체론적으로 어떤 상태로 계신지에 대한 교부들의 이해를 잘 소개해 놓고 있습니다. 웨스트민스터 신조 제 2장 3절에 쓰인 '단일하신 신격(神格) 안에 삼위(三位)가 계시는데, 본질...에 있어서 동일하시다" 에서 신격(골2:9, 테오테스)의 의미만 제대로 알아도 우리 안에 제3격 성령님만 계시고 성부, 성자는 안 계신다는 말은 얼마나 위험하고 진리에 맞지 않는지를 알 수 있을 것입니다.
4.
이제 결론적인 말을 좀 하려고 합니다. 각종 신조들이나 성령에 관련된 서적들을 자세히 살펴본 분들은 아시겠지만, 교회역사 상 성령론에 대한 자료나 이해가 생각보다 많지 않고(일천하고) 사람마다 많은 편차를 보이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체험적으로 성령님을 온전히 아는 사람도 많지 않습니다. 그러다 보니 성령님을 예수 믿을 때 다 받는 것인지 아니면 믿은 후에 별도로 받아야 하는지부터 시작해서 '성령론'관련 오해와 혼잡이 매우 심각한 것이 사실입니다. 이제 이 즈음에서 사도 바울이 강조한 '너희 안에 계신 그리스도'(골1:27)-이것을 확신 못하면 그는 자신의 구원을 재점검해 볼 필요가 있음,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갈2:20)- 자기 삶 속에서 이러한 증거가 없다면 그는 자신이 정상적인 그리스도인의 표준에서 벗어났음을 알고 즉시 회개하여 주님자신에게 삶의 주도권을 내어 드려야 함- 이 두 구절 만이라도 지키게 성도들을 도우면 참 좋겠다는 제안을 드려봅니다.
추신: 성경에서 '영'(Spirit)은 무조건 제 3격 성령님만을 의미하지 않음을 알 필요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고전 15:45의 생명주는 영(살려 주는 영)은 영이지만 제 3격을 가리키지 않습니다. 여기서의 영은 '부활하신 그리스도' 자신을 가리킵니다. 이 영이 생명으로 우리 안에 내주하시는 것입니다(요10:10하, 골3:4, 1:27).